매일신문

최원석의 영화속 과학이야기-혹성탈출

1968년 개봉한 '혹성탈출 The Planet Of The Apes'에서 테일러 대령(찰튼 헤스턴 분)이 절규하던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큼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피에르 불(Pierre Boulle)의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를 팀 버튼 감독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해 만든 것이 이 영화이다.

전작을 능가할 만한 충격적인 장면을 선사하지는 못했지만, 서너 시간씩 걸리는 원숭이 분장이 그나마 볼만하다.

우선 짚어봐야 할 것은 영화 제목의 우리말 번역이다. 우리말의 '별'은 '떠돌이 별'을 뜻하는 행성(行星)과 '붙박이 별'을 뜻하는 항성(恒星)을 모두 지칭하는 말이다.

지구를 포함해 태양계에는 9개의 행성이 있으며, 항성은 태양 하나뿐이다. 그럼 영화의 제목에 등장하는 혹성(惑星)은 어디서 온 말일까 ? 이는 떠돌이라는 뜻으로 '행(行)'을 대신하여, 미혹할 '혹(惑)'을 사용하여 표시한 일본말이다.

영화에서 레오 대위(마크 월버그 분)가 "말하는 몽키(monkey)는 존재하지 않아"라고 하자, 탈출을 도와준 고릴라가 화를 내며 "우린 원숭이야, 몽키보다 진화한 존재"라며 인간보다 우등한 존재라고 한다.

영어에서 긴 꼬리를 가진 것은 monkey, 꼬리가 없는 것은 ape라고 부르며 우리말로는 모두 원숭이라고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침팬지와 오랑우탄, 고릴라는 유인원(anthropoid)이라 불리며 인간과 함께 영장류에 속하는 동물이다.

영화에서는 인간과 나머지 영장류가 편을 먹고 싸우고 있지만, 이는 유전적으로 따져 보면 잘못된 편가르기라 할 수 있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는 99%가 동일하고 인간과 고릴라는 97%, 침팬지와 고릴라도 97%가 동일하다. 또한 인간과 침팬지는 고릴라와 1천만년 전에 갈라져 나왔고, 인간과 침팬지는 500만년 전에 서로 갈라져 진화했다.

따라서 유전자와 진화적인 관점만을 따진다면 인간과 침팬지는 침팬지와 고릴라 보다 훨씬 가까운 사이라서 인간과 침팬지가 한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인간과 침팬지의 1% 차이는 엄청나게 큰 결과를 가져와, 한쪽은 동물원 창살 안에서 구경거리가 되고 한쪽은 구경하는 입장이 되도록 한다.

그렇다면 영화에서와 같이 인간과 원숭이의 입장이 바뀔 수 있을까? 전작에서는 약 2천년의 시간이 흘러가서 원숭이가 진화한 것으로 묘사돼 있고, 이 영화에서는 유전자 조작 원숭이가 등장한다.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는 500만년 동안 각각 진화해간 결과물이므로 몇 천년만에 인간과 침팬지의 지위가 바뀔 가능성은 없다.

우주선까지 조종이 가능한 유전자 조작 원숭이인 패리클스의 경우에도 현재의 침팬지와 거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침팬지 중에서 똑똑한 세모스라는 원숭이가 그 무리를 장악했다고 해서 몇 십 년만에 말을 하게되고, 기술과 문화를 발달시킬 만큼의 변화를 가질 수는 없다.

인류학자 리차드 리키는 인간과 침팬지를 구분 짓는 가장 큰 차이점을 언어나 문화, 기술이 아니라 직립 보행이라고 주장했다. 영화에서 세모스의 후손 원숭이들은 아직도 완전하게 직립 보행을 하지 못해 두 팔을 사용해 전투를 한다. 직립 보행이 얼마나 힘든 기술(?)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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