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독일의 준결승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 못지않게 '스타'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거스 히딩크(56) 한국 감독과 루디 푀일러(42) 독일 감독의 벤치싸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시절에는 빛을 보지 못하다 지휘봉을 잡고 나서야 유명세를 탄 케이스인 반면 푀일러 감독은 그야말로 화려한 선수생활의 명성을 토대로 독일을 이끌고 있는 인물.
미드필더인 선수시절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히딩크 감독은 36세이던 지난 82년 조국 네덜란드의 그라프샤프에서 코치로 취임,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2년 뒤 명문 PSV 아인트호벤으로 옮겨 노하우를 쌓으면서 86년 감독직을 승계했다.
특유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 데뷔 첫해 네덜란드리그를 제패한 것을 시작으로 3시즌 연속 우승트로피를 거머쥐면서 세계 축구계에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96년 네덜란드대표팀을 이끌고 유럽선수권 8강에 올려놓은 히딩크 감독은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조국을 당당히 4강에 올려놓아 명장의 대열에 우뚝섰다.
이후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등을 거친 히딩크 감독은 미완의 한국축구를 18개월간 조련한 끝에 4강신화를 창조하는 등 월드컵 2회연속 4강 견인이란 진기록을 낳았으며 이에 만족하지 않고 결승에 오르겠다는 전의를 불사르고 있다.
반면 '녹슨 전차군단'의 오명을 털어내라는 특명을 받고 2000년 7월 에리히 리벡 감독의 바통을 이어 받은 푀일러 감독은 남부럽지 않은 현역시절을 보냈다.
스트라이커였던 푀일러 감독은 86년 멕시코, 90년 이탈리아, 94년 미국 월드컵에 대표선수로 출전했고 독일은 86년에 준우승한뒤 90년에 우승, 94년에 8강에 오르는 화려한 성적을 얻었다.
90년 우승당시 위르겐 클리스만과 투톱을 이뤄 3골을 뽑아낸 푀일러 감독은 A매치 기록(90회 출전.47골)에서 보듯 당대 슈퍼스타 중 하나였고 베르더 브레멘(독일), AS 로마(이탈리아), 마르세유(프랑스) 등 유수 클럽에서도 이름을 날렸다.
독일이 2000년 유럽축구선수권에서 예선 탈락하는 등 부침을 거듭하자 위기의 독일축구를 구할 대안으로 사령탑에 추대된 푀일러 감독은 플레이스타일은 어느정도 유지한 채 포메이션 변화와 함께 '젊은 피'를 대거 발탁하는 등 40대 감독답게 과감히 대표팀을 수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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