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열규 세상읽기-세계제일이 가장 많은 이탈리아

월드컵 축구경기로 이탈리아와 한국 사이에 달갑지 않은 말썽이 빚어진 모양이다. 우리의 특정한 선수를 두고 험담을 하는가 하면,나라나 민족을 두고도 악담들을 내뱉는다고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로선 무엇보다 손님을 부른 주인으로서 점잖게 대응할 일이지, '눈에는 눈' 하는 식의 맞대응은 하지 말아야 한다. 더욱 이긴 처지다 보니 몸조심, 마음 조심을 한결 더 깍듯이 하는 게 바람직하다. 손님에게 겸양하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닦아온 우리 문화전통의 미덕이란 것도 일깨워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오늘날 유감스럽게도 스포츠가 특히 월드컵 경기가 민족주의의 텃밭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나마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민족주의가 축구공 따라서 나부대고 있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경기에 진 이탈리아가 이긴 우리에게 패악질을 하고 있는 것에도 고약한 스포츠 민족주의가 미적대고 있을 것은 뻔하다.이건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다. 우린들 언제 그 함정에 빠져들지 모를 일이다. 아니 부분적으로나마 이미 빠져들고 있지 않다고 장담할 처지도 아니다.

이탈리아나 스페인이라면, 민족주의에다가 서구인 나름의 묵은 우월주의가 거들고 나설 것이니 패전 뒤의 그들 반응은 아예 처음부터 흉흉하게 되어 있다. 그야말로 뭐에게 부랄 물린 기분일 테니까 말이다.

거기다 오늘날, 스포츠팬들은 소위, '팬돔'의 기질 , 이를테면 팬들이 그 태도 및 행동양식 그리고 사고방식에 걸쳐서 보일 특정한 기질의 본보기다. 좀 말하기 거북하지만, 일반론의 처지에서 따지자면 '오빠 부대'의 '팬돔'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엉뚱하게 감정이 가열되고 거칠어지고 제 정신을 잃게도 된다. 아우성, 열광, 뜀박질, 흥분, 도취, 탈선 등의 징후가 뒤범벅이 되어서 '팬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스포츠의 경우에 이 팬돔은 객관적으로 살펴서 긍정이나, 부정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서 보기 어렵게도 된다.

이게 민족주의와 합세하면 다른 민족이나 외국에 대해서 이성을 잃고 집단적 난동을 부리게 되지만 그게 소위 강대국의경우라면, 새삼스럽게 묵은 제국주의적인 발상이 되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양쪽 다 이 지경에 빠진 것을 우리는 연민의 정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지만, 우리들 스스로도 이 스포츠 민족주의와 스포츠 패너티시즘, 곧 광적인 열정에 말려들지 않게 십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지금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올곧지 못한 반응은 결코 그들만의 것에 국한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누구든 언제든 걸려들고 말려들수 있다는 점에 늘 마음써야 한다. 이런 일반론에 더해서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좀 색다른 것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이다. 이탈리아 중에서도 피렌체는 로마 시대에 이미 축구경기를 한 것을 자랑삼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축구의 대종가(大宗家)고 영국은 피렌체 축구를 수입해서 근대 축구를 시작한 소종가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들 주장이다. 각각 27명의 선수로 된, 네 지역을 대표하는 백, 청, 홍, 녹색의 팀들이 가로80m, 세로40m의 경기장에서축제의 일환으로 승부를 가렸다는 것이다.

거기다 이탈리아인은 별나게 많은 세계 제일을 내세우기 좋아한다. 미술, 건축, 성악에다 패션이나 디자인 분야는 그렇다 쳐도 웬걸 포도주, 치즈에다가 하다 못해, 과자에다 아이스크림, 사내들의 남성스러움도 세계 제일이라는 것이다. 이탈리아 식당에 가서 프랑스 포도주를 시키면 문전 박대를 각오해야 한다.

세계 제일 사내의 나라라고 자부하는 이태리에게 우리가 이겼으니, 이건 해도 너무 한 건가? 그야말로 '가가(呵呵) 대소(大笑)'다.그들이 계속 투정하거들랑 이렇게 웃고 넘기자.

인제대교수 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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