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지하 시인 '花開 출간

김지하(金芝河.61) 시인이 '동이적(東夷的) 상상력'을 시어로 엮은 시집 '화개'(花開)를 출간하면서 '흰그늘'이란 모순된 명제를 새로운 시학적 담론으로 제시했다.

25일 실천문학사에서 출간한 시집의 제목 '화개'는 '한송이 꽃이 피니 세계가 모두 일어선다'(一花開世界起)는 벽암록에서 따온 글귀. 1994년 발표했던 '중심의 괴로움' 이후 8년만에 내놓는 신작의 표제로 최근 시인의 문학적 심경을 내비치고 있다.

여러해 동안 생태학이나 우리 고유사상 등을 연결시켜 영적 담론을 끄집어내 보려는 고민으로 시작(詩作)이 여의치 않았다는 그는 2년 전부터 전국의 명산대찰을 찾아 몸과 마음의 휴식을 가지면서 좋은 시상이 많이 떠올랐다고 한다.

"구례 화엄사를 찾았을 때였어요. 한밤중에 자꾸 쏟아지는 시상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그것을 옮겨 놓은 것이 최근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에 발표한 시 13편입니다 ". 여기서 그는 난(蘭).화엄.동학.선방.율려 등 낯익은 시어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엔 낸 시집은 화엄사에서 돌아온 뒤 옛 노트 속에서 발견된 100여편의 미발표 원고를 함께 엮은 것. 표제작 '개화'를 비롯, '가야의 산들'.'용담수운' 등은 몇해전 옛 가야 땅을 여행하며 써둔 작품들이다.

시인은 요즘 불교에 무척 관심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청량한 기운이 서린 고찰을 자주 찾는다. 특히 칠성각.삼신각 등에서 볼 수 있는 불교안의 선도(仙道)에 관심이 높다. 불교에 남아 있는 풍류에서 조화를 찾는 일. 그것은 '동이적 상상력'으로 부르기도 하는 풍류나 선도의 전통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가진 문화나 사상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서양.혁명.정치 따위에서 비롯된 문학적 상상력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강조하는 그는 "이제 생명.영성.평화 그리고 대립 속의 통일과 조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것은 그가 최근 제시한 '흰그늘'이란 새로운 시학적 명제와도 상통한다. "흰빛과 그늘은 상호모순입니다. '흰그늘'이란 '그늘과 고통 속에서 발견하는 신성한 기운'이라 할 수도 있어요".

시인은 '흰그늘'을 인고에 찬 화해이자 변증법적 지양(止揚)의 뜻으로 읽는다. 새 시집에서도 이같은 명제가 포함된 모순어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서로 모순된 시어나 행 사이의 틈을 이용해 다르면서도 공존할 수 있는 세계를 추구하는 것.

이 모순되면서도 일치하는 역(易)의 논법은 저항과 투옥으로 점철된 자신의 치열했던 삶과 이순(耳順)을 넘긴 시인의 연륜에서 담금질되어 나온 깨달음의 결과가 아닐까.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