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축구 없는 세상?

한달간 온 나라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월드컵이 이제 막을 내리려 한다. 사람들이 모였다 하면 늘 축구 이야기뿐이니 다른 화제는 아예 끼어들기조차 어려웠다. 대통령 아들이 둘씩이나 감옥에 가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는데도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고, 지방선거는 그저 하프 타임의 막간 쇼 정도에 비유할 수 있을까.

이제 이틀 뒤면 축구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 평상의 삶을 꾸려가야 하는데, 다음 월드컵까지 무슨 재미로 살아갈지 막막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축구는 축구일 뿐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번 월드컵의 의미를 한번 되새겨 보자.

먼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관광 수입을 이야기하고, 또 어떤 사람은 국가 브랜드의 상승 효과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과 나눈 반쪽 월드컵이 되는 바람에 수입은 온전한 대회의 절반 이하로 줄었을 것이다.

반쪽 대회 자체가 무리가 많다고 본다. 게다가 대구 경기에서 보듯이 국산 맥주는 못 팔게 하고, 미제 버드와이저 맥주만 팔게 하는 FIFA의 횡포, 그리고 10개나 되는 도시에 거대한 경기장을 지었으니 FIFA는 돈을 벌었는지 모르나 우리는 본전 뽑기가 어려워 보인다.

큰 성과는 다른 데 있다. 첫째, 우리 민족의 엄청난 응집력과 단결을 이끌어 냈다는 점이다. 거리에 쏟아져 나온 인파의 규모나 열기에서 해방 직후 상황과는 필자가 경험해보지 못해서 비교할 수 없으나 적어도 1987년 6월의 민주항쟁보다는 더한 것으로 보인다.

15년 전 6월에는 젊은이들만 거리로 나와 최루탄에 눈물 흘리며 '독재타도'를 외쳤으나 이번에는 온 국민이 '대-한민국'을 외쳤으니 그 열기와 범위가 비교가 되지 않는다(그러나 인생에서 축구가 민주주의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둘째로 우리 국민의 가공할 잠재력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우리 민족은 개개인은 똑똑하나 단결이 안돼 모래알 같고 따라서 발전할 희망이 없는 민족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 온 민족이 보여준 애국심과 정열, 그리고 선수들이 보여준 불굴의 투지와 정신력은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하였다. 이런 우수한 바탕을 갖춘 민족에 훌륭한 지도자만 있다면 헤쳐나가지 못할 난관이 무엇 있으랴.

우리 현대사를 통틀어 볼 때, 사심 없는 대통령을 한 명도 만나지 못한 불운의 연속이었으나 장차 그런 지도자가 나오기만 한다면 우리 민족의 장래는 어느 나라보다 밝다고 낙관해도 좋다고 본다.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앞으로 고쳤으면 하는 점도 있다. 첫째, 50년 간 월드컵 출전에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는 탓에 한이 맺혀 그랬다고 이해는 하지만 승부에 대한 국민의 염원과 집착은 도를 넘은 느낌이 있다. 이번에는 그것이 승리의 견인차 노릇을 했지만 장차는 이런 열기가 감독과 선수들에게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제 뜻밖의 큰 성공을 거두었으니 앞으로는 지나친 승부욕에서 조금은 벗어났으면 한다. 또 외국인에 따라서는 운동장과 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 옷 일색에 전체주의를 연상하여 부정적으로 보는 자도 있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그 보다는 외국 선수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대범함, 성숙함을 보일 때, 우리는 외국으로부터 대국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둘째, TV 화면 앞에서 열광하는 사람보다는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차는 사람이 훨씬 많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나라의 초등학교 축구팀은 2백여 개에 불과한데 일본은 9천 개에 가깝다. 저 성채같이 웅장한 축구 경기장의 문을 꽁꽁 걸어 잠글 게 아니라 활짝 개방하자.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마음껏 공을 차고 즐기는 진정한 국민 스포츠로 축구가 성장하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스타들의 축구는 월드컵과 함께 끝나지만 생활 스포츠로서의 축구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정우(경북대교수.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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