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의도 통신-정치인의 의리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의 마산 합포 재선 공천을 놓고 인간적 갈등을 겪고 있다.

얼마전 YS와 만난 뒤 잠을 잘 수가 없었다는 서 대표는 김씨의 공천 여부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나에게 묻지 말라"고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았다. 지방선거 전 YS와의 관계개선을 희망하며 러브콜을 보냈던 한나라당의 분위기는 공천불가다.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의원의 거취를 놓고 자진탈당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민주당 쇄신파는 "불가피할 경우 당이 출당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교동계 구파의 김옥두 의원은 "김 의원을 탈당시키려면 나부터 먼저 제명하라"고 반발했다.

지방선거, 특히 서울에서의 참패에 충격을 받은 민주당에게는 DJ 그늘에서 완전하게 벗어나기가 최대 과제가 됐으나 DJ와 함께 정치역정을 걸어 온 동교동계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YS를 찾아가 과거 인연과 의리를 지나치게 내세우다 역풍을 맞은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는 이제 DJ와의 관계 단절이 지지도 만회를 위한 최대 과제다. 그럼에도 아직 노 후보 자신은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후보 선출 전 "대통령이 되겠다는 욕심 때문에 전직을 짓밟고 넘어가는 일은 없다"고 공언한 그가 어떻게 DJ와의 차별화를 시도할 지 관심거리다.

박근혜 미래연합 대표는 탈당전 "의리를 저버린" 한나라당 의원들과 이회창 당시 총재를 향한 불만을 자주 털어 놓았다. "선거 때면 '박정희의 딸'인 나를 이용하고 선거가 끝나면 박정희를 부정하는 행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원유세로 도움을 받은 의원이 공개석상에서 아버지를 비난할 때는 인간적인 배신감에 분노했다"고 격한 감정을 내보이기도 했다.

"내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이 후보의 오늘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고 울분을 터뜨렸던 김윤환 민국당 대표나 자신의 퇴진을 주도한 정동영 의원에 대한 배신감을 삭이지 못했던 권노갑 전 의원의 모습에서 비정한 정치 현실은 역력히 드러났다.

거꾸로 세상의 비난에 아랑곳 않고 '정치적 의리'를 고집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분신으로 불려지는 장세동 전 안기부장의 행보는 대표적 사례다.

YS정권 말기에 치러진 총선에서 신한국당 공천을 받은 후보들이 신한국당 후보임을 알리기조차 주저할 때 총선 홍보물에 김 대통령의 사진을 과감히 실었던 이상득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이 일로 YS로부터 두고두고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다.현 정권은 집권 후 신세진 사람들에 대한 관리소홀로 만신창이가 됐다.

한나라당 윤여준 의원은 오래전 사석에서 "이회창 후보는 대통령이 되더라도 신세진 사람들에게 개별적인 보상을 하지 않는다. 그래야 깨끗한 정치가 가능하다"고 했다. 정치의 세계에서 인간적 의리는 어디까지일까.

서영관기자 seo123@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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