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려한 美문명 종말 고하나

오스발트 슈펭글러는 그 유명한 저서 '서구의 몰락'(1918)을 통해 모든 문명은 다른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발생.성장.노쇠.사멸의 단계를 거친다며 노쇠한 당시 유럽문명의 몰락을 예고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은 쇠퇴기동안 경직되고 그 문명의 중심축을 이루던 이데아는 핵심적인 정신으로서의 내용물들을 잃고, 결국에는 사멸되고 만다는 것.

이러한 관점은 요즘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문화역사학자인 모리스 버만은 '미국문화의 몰락'(황금가지 펴냄)을 통해 슈펭글러가 거의 1세기전에 걱정했던 세계 중심축으로서의 문명의 몰락을 논의하고 있다.

물론 슈펭글러는 유럽을, 버만은 미국을 그 중심축으로 하고 있다는 데 차이는 있지만.과거에 화려했던, 그래서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 같았던 문명들, 즉 바빌로니아, 황하, 이집트, 그리스.로마 문명이 역사속으로 사라진 현실에 비춰 한 문명의 몰락은 필연이다. 이에 따라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문명'의 몰락도 피할 수 없으며 그 전조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버만은 4가지의 구체적인 전조를 들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미국에 경고한다.중산층의 붕괴와 가속화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 사회보장제도의 위기, 학생들의 지적수준 하락, 소비위주의 문화상업주의에 따른정신의 죽음 등이 그 징후들이다.

현재 미국은 상위 1%의 고소득 계층이 미국 전체 부의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1998년 빌 게이츠의 순수익(460억 달러)이 하위 40% 전체순수익을 넘어섰다. 극심한 경제적 불균형은 중산층을 무너뜨렸다. 또 선진 사회를 구성하는 근간인 사회보장제도는 출생률의 급감과 노령화 사회가 됨에 따라 2015년쯤이면 지급불능 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학생들은 둔재가 돼버렸고 대학은 오로지 최고의 수익을 보장하는 직장에 갈 수 있는 학위판매상점에 지나지 않으며 대기업이 주도하는 상업주의가 국민의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사회가 돼버렸다는 지적이다.

물론 슈펭글러가 '강력한 지도자'를 대안으로 내놓았듯이 버만도 '신수도사적인 인물'을 미국문명의 몰락을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신수도사적인 인물'이란 4세기경부터 수도사들이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그리스.로마문명의 가치있는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책과필사본을 모아 후대에 전한 것에서 따온 것.

그러나 현대의 수도사는 이들처럼 격리된 채 금욕생활을 하는 집단이 아니라 '기업의 문화 지배에 따른 소비와 물질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 '미디어와 반문화가 부추기는 뉴에이지 유행에 휘말리지 않는 사람' '엘리트주의자라고 매도당하는 데 아랑곳 하지 않는 사람' 등을 그 속성으로 하고 있다.

즉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 하나하나가 영리나 소비주의에 자신의 삶의 토대를 두지 않고 양심에 따라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때 문명의 몰락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슈펭글러가 로마제국의 영웅인 시저같은 위대한 인물이 문명의 몰락을 구원할 수 있다고 본 반면 버만은 학생들에게 고전을 읽게 하는 교사, 베스트셀러보다는 후손에게 좋은 작품을 남기려는 작가 등 다수의 대중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지화기자 jjhw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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