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축구와 음악 그리고 인간

뜨거웠던 월드컵 축구 열기도 흥분과 아쉬움을 남긴 채 서서히 종반을 향하고 있다.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에 대해서 문외한인 필자에게는 독일 유학시절 독일 학생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것이 매우 낯설고 신기하기만 했었다.

오르간전공 교수이자 오르가니스트인 필자가 이번 월드컵 축구에 대해서도 여전히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중, 스포츠면이 아니라 정치·사회면과 경제면에서 '히딩크를 배우자' '히딩크의 리더십과 교훈' 등의 히딩크 신드롬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게 되었다.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축구와 음악, 한국의 축구와 음악, 그리고 히딩크 축구와 한국의 서양음악에 대한 탐구를 시도하였다.

축구와 서양음악 모두 100여년전에 서양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한국에 유입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개화기, 일본 식민지시대와 해방,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축구와 음악 역시 혼란과 시행착오의 초기단계를 형성하였다. 본격적인 발전 단계는 1960년대부터이다.

이 무렵부터 큰 도시에 축구장을 겸한 종합운동장이 건설되고 실업축구팀이 창단되기 시작하였다. 마찬가지로 음악분야에서도 종합연주회관이 건축되고 각 대학교에 서양음악과(성악, 피아노, 관현악, 작곡)가 대폭 신설되었다.

이러한 외형적 팽창과 발전을 바탕으로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엄밀한 의미에서 프로정신의 전문인 개념이 정착되기 시작하였다. 축구의 경우 프로팀 창단과 프로리그, 프로선수들의 해외진출과 수입이 활성화되었다.

음악의 경우도 음악 전공교육과 전문연주 역할의 구분이 비로소 뚜렷해지고, 국제 음악콩쿠르 입상과 세계적인 연주자가 배출되고 있다. 즉 축구와 음악의 수준이 한 단계 상승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히딩크 신드롬이 왜 이토록 강렬하게 일어나고 있을까? 히딩크감독은 체력과 기초를 강조했다. 그는 전술훈련이 시급하다는 비판을 일축하면서 체력훈련을 일관되게 시행했다.

그러면서도 전술훈련 역시 소홀히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음악 역시 기초가 중요함은 말할 나위 없다. 어떤 곡을 연주하느냐 보다는 능력과 수준에 맞는 선곡을 하여 어떻게 연주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기초를 쌓아야할 청소년 시기에 당장의 승부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이기는 요령만 체득하는 축구의 경우나, 연주를 위한 기본을 간과한 채 속성으로 기술만 익혀 대곡 위주로 연주하는 음악 풍토가 어찌 다르다 하겠는가?

히딩크는 치열한 경쟁을 통한 능력 위주로 선수를 선발하여 조직을 가다듬었다. 학맥, 인맥, 옛 명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정하게 선수를 선발하고 구성하여 적재적소 투입으로 선수 각 개인이 자율적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가는 컴팩트축구를 추구하였다.

이것은 토털사커의 원조인 네덜란드식 선진축구를 한국축구 실정에 맞게 접목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공정성과 신뢰성이 선수들로 하여금 목표 달성을 위한 조화와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 것이다.

음악분야에서도 출신학교나 인맥 등 파벌에 의해서가 아니라, 연주능력과 경쟁을 통한 공정한 단원 선발과 구성이 필요하다. 그러할 때 각 개인의 연주력이 각 파트별 특성과 함께 전체적인 하모니 속에서 예술성이 더욱 잘 표현될 것임은 분명하다.

히딩크는 "(축구)게임을 즐겨라!, 생각하는 축구를 하라!"고 하였다. 강요에 의해 마지 못해 목적의식 없이 하는 훈련과 경기에는 '즐거움'과 '생각'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무의미한 기계적 단순반복형일 것이다.

음악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음악이어야 한다. 부모 등의 강요나 혹은 입시나 졸업을 위하여 특정한 범위의 몇 곡을 단순 암기하는 음악은 기계적일 수 밖에 없다. 음악은 정확성외에도 정신이 깃든 창의성과 예술성이 나타나야 한다. 축구와 음악에도 그에 대한 사랑이 필요하다.

앞서 열거한 히딩크 축구의 리더십은 적어도 그 용어만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으며, 입으로 강조해 온 사항들이다. 그럼에도 이번 월드컵에서 변방의 한국축구가 세계축구의 중심으로 다가가는데 기여한 히딩크의 절대적 역할에 열광하는 가장 기본적인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 중심'일 것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축구와 음악 모두 인간이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공통성이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당연히 그 중심에 서야 한다.

16세기 르네상스시대에 깨달았던 인본사상(人本思想)을 우리들은 19세기 말부터 한 세기가 넘도록 상실하였다. 잃어버렸던 그 '인간성'을 되찾아야 하는 곳이 어디 축구와 음악 뿐이겠는가?

권언수(계명대교수·오르가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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