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심훈의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 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으로 만들어 들쳐 메고는

-심훈 '그 날이 오면'

'상록수'의 작가 심훈이 쓴 시이다. 심훈은 시 뿐만 아니라 당시 영화감독으로도 재능을날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시는 민족해방에 대한 강렬한 소망을 담고 있다.

EM 바우라 교수(영국 옥스포드대)가 편찬한 세계 저항시집에 실린 유일한 우리나라 시이다. 머리로 종로 인경을 들이받고, 몸의 가죽을 벗겨서라도 북을 만들겠다는 결의가 섬뜩할 정도로 열렬한 애국심이 느껴지는 시이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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