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자원봉사 '실버꿈터' 회원들

교장선생님으로 퇴직한 이규익(74·대구시 달서구 성당동) 할아버지는 퇴직 7년만인 지난 5일부터 가르치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교재는 꼬박 1주일 걸려 손수 만든 한글 걸음마용 간이책자. 40여년간 가르치는 일을 업(業)으로 삼아왔지만 이 날만큼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선적은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할아버지 선생님이 한글을 가르치는 학생은 홍정여(73·가명) 할머니. 홍 할머니는 대구시 달서구 신당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다.

"나 또한 퇴직 이후 혼자 살면서 두류공원 청소를 해왔는데 우연한 기회에 한 복지관에서 노인봉사단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어요.

청소보다는 좀 더 체계적인 봉사활동을 해보자는 마음에서 복지관을 찾았는데 할머니 한 분을 소개해주더군요".그래서 이 할아버지는 대구시 달서구 신당사회복지관 소속 노인자원봉사단인 '실버꿈터' 소속 자원봉사자가 됐다.

이 할아버지 외에도 혼자서 봉사활동을 하던 홀몸노인 20명이 복지관 주선으로 지난 5월에는 '실버꿈터'라는 봉사단체마저 꾸렸다.

이 복지관 주변 임대아파트에는 홀로 쓸쓸히 살아가는 노인들이 많다. 이들이 '실버꿈터' 봉사자들의 봉사대상. 처음엔 쑥스러워하던 임대아파트 노인들도 실버꿈터 노인들의 정성에 지금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있다.

실버꿈터 노인봉사단의 역할은 다양하다. 이 할아버지처럼 교직경력을 살려 한글을 가르치기도 하고 간병인 봉사경력을 이용, 노인들에게 마사지를 해주는 봉사자들도 있다.

"남편과 헤어진 뒤 공장에도 다니고 지하철역 청소도 했는데 요즘처럼 보람있는 때가 없어요. 제 몸 추스리기도 바쁜 한평생이었는데 내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니 이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겠어요". 노인들의 마사지봉사를 맡은 실버꿈터 곽순덕(60·대구시 달서구 도원동) 할머니는 봉사활동이 자신에겐 축복이라고 했다.

다양한 봉사경력을 가진 노인들이다보니 모임을 주도하는 솜씨들이 젊은이 뺨쳐 스스로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봉사활동을 나설 정도다.

신당복지관 서정혜 사회복지사는 "실버꿈터 노인봉사자들은 임대아파트 홀몸노인들이 먹을거리가 없으면 주머니까지 턴다"며 "실버꿈터 사연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임대아파트에 홀로 사는 부모를 외면해오던 가족들도 부모를 더 자주 찾고 있다"고 말했다. '홀몸 사랑은 홀몸이 최고라구...'. 이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쟁징하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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