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유학생활을 마치고 대학에서 강의한지 벌써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학생들을 만났고, 실기시간 만큼이나 작업에 대한 대화를 중요시했던 나로서는 그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항상 궁금한 점이 많다. 나이든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귀찮아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언제나 많은 질문을 하면서 자신의 작업과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사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해온 것이 무엇이고, 그 결과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학생들에게 미술의 실체를 정확히 알려주거나 작가가 되는 과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단지 학생들에게 자극을 주고 작업의 의미와 동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것 뿐이다. 미술에 평생을 바쳐야하는 작가가 되는 길은 그만큼 지난한 일이다.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슬라이드로 함께 보면서 작가적 입장에서 동기와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 토론을 나누었다. 때론 논리적으로 때론 서툴게 얘기를 했지만 결과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한 예비화가의 질문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 학생은 "그렇다면 지금 미술의 중심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어왔다.
유럽,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또 서울이 아닌 대구라는 변방에서 작업을 해야하는 예비작가들에게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정확히 답변을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답변을 이곳에서 한번 해보려 한다.
정신의 산물인 미술은 늘 세계의 외곽에 존재해왔다. 최근 세계화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지역적'과 '국제적', '지방적'과 '대도시'사이의 교환이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중심에 대한 생각을 혼란시키거나 중심을 증식시켜 미술이 세계 각지에서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했다. 이런 상황은 작가가 자기만의 중심을 창조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역시 미술이 존재한 이래로 세계의 가치기준을 결정해온 것은 늘 작가 자신이었고, 작가 개인의 힘은 지역, 학벌, 국적, 인종 등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항상 담보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피카소나 백남준을 들지 않더라도, 미술이 위대하다는 것은 여기에 있는게 아니겠는가.
박종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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