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월드컵 이후-대구문화행사 '열기'

한국인의 긍지를 한껏 살린 한.일 월드컵. 단순히 축구경기만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축구의 박진감에 가려있긴 했지만, 수많은 문화행사가 월드컵 열기의 한 축을 이뤘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결국 '문화'만큼 한국과 대구의 이미지를 제대로 각인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월드컵이었다. 최현묵(45) 대구월드컵 문화행사 총감독은 "4강 진출이 한국인의 저력을 과시한 것이라면, 각종 문화행사는 한국인, 대구사람의 정체성을 대내외에 보여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월드컵 기간 중 대구에서 벌어진 각종 문화행사는 모두 80여개. 지금까지 지역에서 1개월이란 짧은 기간동안 크고 작은 행사가 이처럼 집중된 예가 없었다. 오페라 '투란도트', 미술행사 '대구아트엑스포'같은 큰 행사부터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펼쳐진 미니 콘서트, 국악공연, 민속놀이 등 자그마한 행사까지 국내외 관광객과 시민의 호응도는 무척 높았다.

지난달 29일 월드컵 경기장에서 만난 일본인 아키코 스루미(26)씨는 "각종 문화행사를 통해 패션과 역사.문화가 혼합된 대구의 정체성을 읽을 수 있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무엇보다 이번 월드컵 문화행사의 최대 수혜자는 대구 시민이었다는 지적이 흥미롭다.

오페라 '투란도트'의 예술감독인 김완준(53)씨는 "사흘 동안 6만명이 관람했다는 것은 세계 오페라 역사에 유례가 없는사건"이라면서 "시민들의 문화욕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대구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한 시민은 "오페라를 처음 보고 난뒤 사람들이 왜 그리 비싼 돈을 주고 서울까지 올라가 오페라를 보는지를 알게 됐다"고 썼다.

전국 53개 화랑에서 화가 120여명이 참가한 '대구아트엑스포2002', 미술의 대중화를 표방했던 '대구신천환경미술축제'에도수만명의 시민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수준높은 문화행사로 인해 문화에 눈뜬 시민이 크게 늘어났다는 반증인 셈이다. 문제는 과연 높아진 시민의 문화마인드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느냐는 점이다. 자금 확보가 어려운 현실로서는 반짝 특수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김일환(53)대구미술협회장은 "월드컵 이후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예술인들의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면서 "예술인들이 자체 역량을 극대화시키면서 대중 속으로 파고 들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그렇지만 내년 8월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다시 한번 대구사람이 갖고 있는 문화적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대구유니버시아드 조직위는 20억원의 예산을 투입, 월드컵 문화행사를 참고해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조직위 관계자는 "대구의 전통과 현재, 젊음이 어우러지는 세계적 축제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구사람의 문화력을 보여주고 시민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행사가 됐으면 좋겠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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