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프랑스의 저명한 여성 미술평론가가 자신의 성생활을 고백한 책을 내놓아 폭발적인 관심을 끈 적이 있다.
'카트린 M의 성생활'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고, 전세계 23개국어로 번역 출판됐다. 그는 자신의 성생활을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표현했지만, 결코 외설적이거나 음란하지 않고 오히려 문학적 향기를 담았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당시 프랑스에서는 새삼 미술가들의 성에 대한 태도가 함께 도마위에 올랐던 기억이 난다. 성(性)만큼 세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제도 드물 것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림만큼 성을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분야가 어디 있을까. 꽉 막힌 유교사회인 조선시대에도 신윤복은 낯뜨거운 춘화를 여럿 남겨놓았고, 기독교 윤리가 지배하는 서양 중세시대에도 성화(聖畵)를 빙자(?)해 여성의 벗은 몸과 남성 성기를 잔뜩 그려놓은 화가들이 수두룩했다.
그 유명한 파블로 피카소를 보자. 20세기 최고 미술가로 불리는 피카소가 남긴 작품 4만5천점 중 그 절반 가까이는 성을 주제로 한 것이다. 파리에 있는 파카소 미술관을 둘러보는 관람객 중 노골적인 성묘사로 인해 낯 붉히는 이가 적지 않다. 우리가 교과서 등을 통해 눈에 익은 작품 '게르니카' '아비뇽의 처녀들'은 정말 고상한 편에 속한다.
피카소는 숱한 여성편력을 통해 작품의 영감을 얻은 화가다. 1912년 '청색 시대'에 가난한 이들의 절박한 생활을 묘사하다 페르난도 올리비에를 만난 그는 그녀의 헌신적인 도움과 싱그런 육체 덕분에 침울한 청색을 벗고 '장미 시대'로 변신할 수 있었다.
그뒤 몇 여인을 거친 후 무려 6개월이나 쫓아다닌 열일곱살 처녀 마리 테레즈를 작업실에 데려와 '거울앞에 선 처녀'라는 걸작을 완성했다. 물론 그녀는 5년 뒤 피카소가 앙리에트 마르코비치라는 프로 사진가를 사귀기 시작하면서 딸과 함께 버림을 받았다.
근데 그녀는 순정(?)의 여인인 듯 피카소가 죽었을때 저승에서도 그를 보살펴야 한다면서 뒤따라 목숨을 끊었다. 피카소는 여든 한살에 법적으로 재혼한 자클린 로크와 마지막 10년을 함께 했다.
가장 오래 동거한 여인이 아닐까어디 피카소뿐이겠는가. 여자문제(혹은 남자문제)로 인해 골치를 썩이는 화가가 어디 한둘인가(그렇지 않은 화가가 훨씬 많다).
심지어 '오빠부대'를 달고 다니는 이도 있다. 부와 명예, 그리고 예술이라는 고상함까지 갖춘 일류 화가들은 여성들에게 진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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