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진짜그림이란?

'화가는 텅빈 캔버스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판에 박힌 것들과의 투쟁으로부터 시작한다'.

어떠한 회화도 그대로 재현된 적이 없다. 회화가 표현해야 하는 것은 재현이 아니라 재현의 질서가 붕괴되는 바로 그 순간이며, 그 생성 자체의 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가의 감각은 끊임없는 변화와 힘, 리듬과 같은 개념과 연결된다.

나는 학생들에게 그들의 그림을 봐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가 많다. 당연히 나는 선생이고 그들은 학생이기 때문에 그리 특별한 부탁은 아니겠지만, 하지만 때론 학생들이 무엇을 바라고 원하는지 이해 못할 때가 있다.

그들은 흔히 그림의 화면(작업표현)이 감각적으로 잘 표현되고, 세련되게 보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나는 감각이 '사고적 감각'과 '행동적 감각'(혹은 표현적 감각과 시각적 감각)이라는 두가지로 이뤄졌고, 어느 하나 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너무도 손쉽게 취하고 많은 것을 편하게 보고 느끼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탓에 작가 또한 시각적으로 보고 느끼는 감각이 빨리 업그레이드된 것이 사실이지만, 필연성이 존재하지 않는 감각의 발전은 작가들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진짜 그림'을 그리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진짜 그림이란 정신성이 결여된 형식의 유사성만을 좇는 그림같은 그림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녹아있고 투영된 내적 필연성에 기인된 그림을 말하는 것이다. 나 또한 지금 유사성을 좇는 그림을 그릴지 모르지만, 진실된 그림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상업화랑에 걸려 있는 세련되고 잘 포장된 작품앞에서 미술의 가치를 결정짓고 있다.

폴 세잔이 서른번 넘게 생 빅투와르산을 그리다 자기가 바라는 그림에 도달했을때, 들판을 가로 질러 집으로 뛰어와 아내에게 흥분된 목소리로 "산을 그렸노라"고 외쳤다.

아내는 그림을 보길 원했지만 세잔은 보여줄 게 없었다. 그림을 들판에 놔두고 빈손으로 달려온 것이다. 세잔은 "결과가 어떠하든 간에 내가 그렸다는 사실이 중요하지…"라고 말했다.

미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끔 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과정인 것이다. 새삼 무디고 무능한 화가의 성실성보다는 예술에서 진실을 부르짖는 절대주의자 말레비치가 생각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박종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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