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생활속의 문화-(3)상례문화의 어제와 오늘

한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무척 슬픈 일이다. 그렇지만 그 죽음을 처리하는 상례(喪禮)과정은 너무 희화적이다.

얼마전 안성기씨가 주연한 '축제(임권택 감독)'라는 영화가 새삼 생각난다. 한 노인의 죽음을 놓고 3일동안 상가집에서 벌어지는 온갖 해프닝을 옮긴 작품이었는데,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었지만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도 적지 않았다.

요즘 장례식장에 가보면 '경건' '엄숙'같은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문상객들이 상주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술을 마시고 고스톱을 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로 받아 들여진다. 이를 사회적 통념으로 인식하는 시점에서 예전의 예법(禮法)과 비교해 옳고 그른지 따져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상가집에서 밤샘하는 것이 옳은가?=결론적으로 좋지 않을 수 있다. 요즘 성인 남자라면 가까운 지인이 상을 당했을 경우 상가집에서 밤 새울 각오를 하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그 지인에 대한 예의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친지가 없거나 문상객이 많지 않을 경우에는 친지가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주는 것은 기본 예의처럼 돼 있다.

엄격하게 상례를 지켜야 했던 조선시대에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 다만 멀리서 찾아온 문상객은 잠을 자고 갔을 뿐이다.그 당시 한달넘는 장례기간으로 인해 틈틈이 쉬어야하는 상주를 밤늦게까지 붙잡아 놓는 경우도 없었다. 문상객들은 엄숙한 마음으로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고 가족을 위로했을 따름이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확연히 바뀌었다. 한학자 한상우씨는 "상가집에서 밤샘하는 풍습은 상당부분 20, 30년전 합법적으로술먹고 노름하기 위한 핑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술먹고 노름하는 것은?=당연히 맞지 않다.얼마전 TV에 한 외국인이 나와 "상가집에서 고스톱을 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양사람들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일 것이다.

예전에는 상가집에서 술먹고 고스톱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공자가 논어에서 '喪與其易寧戚'(초상을 잘 치르는 것보다 차라리 슬퍼하리라!)이라 한 것처럼 엄숙한 분위기에서 상례가 행해졌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에도 상가집에서 고기와 술은 나왔다. 예법에는 맞지 않았지만, 부잣집이나 양반집에서는 '초상 잘 치렀다'는 주위의 얘기를 듣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한 일이었다. 물론 술에 취해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예의에 크게 어긋나는 행동었다.꼿꼿한 선비집안의 경우 문상객에게 밥과 산채나물만 내놓았다고 한다.

▨호상(好喪)이란 있는가?=틀린 얘기는 아니다.고령에 복을 누리다 편안하게 숨을 거둔 경우 호상이라는 얘기를 한다. 요즘 상가를 찾은 문상객은 고인이 호상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게 기본처럼 돼 있다.

예전같으면 감히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이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천붕(天崩)'이라는 단어를 쓰듯 만수무강하길 바라야 하는게 자식의 도리였다. 호상이란 말 만큼 상례의 변화상을 잘 반영하는 것도 찾아보기 어렵다.

▨상례문화는 끊임없이 변하는 것?=맞는 얘기다. 예전 사례만 그저 쫓을 일은 아니다. 우리는 조선시대 예법의 표피를 쓰고 있지만, 현대인으로서의 삶에 맞춰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학자 김홍명씨는 "다른 것은 몰라도 상가집에서 술먹고 고스톱을 치거나, 여비를 받아 또다시 술집에 가는 풍토는 아주 잘못된 일"이라면서 "모두가 합의하고 수긍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상례문화를 조금씩 바꿔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요즘에는 갈수록 상가집에서 밤샘하는 문상객이 줄어들고 있다. 몇년전과는 달리, 조문만 마치고 빨리 자리를 뜨는 경우가 훨씬 많다. 현대인의 문화가 갈수록 합리적인 형태로 바뀌고 있는지, 메마른 쪽으로 가고 있는지 현재로선 판단하기 어렵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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