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재옥씨는 개량 한복을 만드는 사람이다. 천연섬유와 감물, 쪽, 황토 등 천연염색 물감으로 생활한복, 침구, 인형, 다양한 소품을 만든다. 15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했던 그가 한복을 만들기 시작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강원도 영월이 고향인 40대 중반의 엄씨는 누에가 자라 고치를 만드는 과정과 어머니가 물레로 명주실을 잣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요즘 아이들은 그런 광경을 구경할 수 없다. 누에와 명주실은커녕 한복을 입어 본 적이 없는 아이들도 있다. 엄씨는 이 못마땅한 전통의 단절을 극복하고 싶었다.
엄씨는 한복을 일상복으로 입는다. 아이들에게도 직접 만든 한복을 입혔지만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놀림감이 된다며 아이들이 거부했다.
엄씨가 한복을 짓는 이유는 또 있다. 주부들이 시간을 쪼개 복지관, 문화센터 등에서 배운 기술을 쓸 데가 없다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가 솜씨 있는 이웃 주부들에게 이른바 외주를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창시절 전공했거나 문화센터에서 배운 기술을 써먹을 기회를 만들자는 취지에서다. 애써 배운 기술도 써먹고 적지만 가정 경제에 도움이 될 수익도 얻을 수 있어 좋다.
대학시절 의상 디자인을 전공했던 엄씨는 스스로 개량한복을 개발한 사람이다.아직 개량 한복점이 생기기 전의 한복점에서 월 60만원의 과외비를 지불하고 한복 짓는 법을 배웠다.
그 기술 위에 생활미를 더해 나름대로 개량 한복을 창조해낸 것이다. 그러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엄씨와 아이가 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사람이 한복을 입은 모양이 오히려 어색해 보이는 이상한 문화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느끼는 순간이다.
"사막의 나라 사람들은 사막의 나라대로, 유럽인은 또 그들 나름의 옷을 즐겨 입습니다". 엄씨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한복을 청바지처럼 입을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 한복짓기를 시작했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대인들에게 전통 한복은 별 인기가 없다. 입기 편하게 만든 생활한복도 처지는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래서 대구시 수성구 지산동에 열어 둔 가게 '한복 무샘'은 돈벌이와 별 무관하다.
그러나 엄씨는 오늘도 가게문을 열어놓고 한땀 한땀 한복을 짓는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사람은 나쁜 짓을 않는다". 어린 시절 엄씨에게 할머니가 들려주신 말씀이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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