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비-(2)義에 산다

유학은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인(仁) 의(義) 예(禮) 지(智) 네가지 덕성을 잘 구현함으로써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인의예지는 어렵게 토를 달면 끝이 없지만 쉽게 말해 어짐 바름 예절 지혜에 다름이 아니다. 그리고 이 네가지 덕성은 삼강오륜(三綱五倫)의 질서를 잘 지킴으로써 바르게 펴질 수 있다고 가르쳤다.

애당초 인간은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상정하는 유학은 이 네가지 덕성 가운데 의(義)를 중심축으로 보고 중요시했다. 바름, 바르게 사는 삶은 질서있고 조화로운 사회관계 정립의 기본이기 때문이었다.

바름의 기준 의리(義理)가 있어야 만남의 도리인 어짐이 생겨나고 예절이 따르며 지혜가 쓸모있게 된다. 그래서 유학은 이 의(義)를 이기심의 이(利)와 구별하고 이를 멀리하고 의에 따라 살기를 강조했다.

이(利)는 개인적인 이익(私)을 의미하며 나를 포함한 공동체 전부의 이익(公)과 구별된다. 오늘날 흔하게 사용하는 말인 공사(公私)의 구별도 여기서 나왔다.

유학은 이처럼 더불어 사는 모든 사람의 이익을 우선시 함으로써 공동체사회를 부정하진 않지만 개인의 안락에 더 비중을 두는 노장의 도가(道家)와는 다르며, 현세의 삶을 공(空)으로 부정하고 시작하는 불가(佛家)와도 구별된다.

원시유학보다는 경직되고 관료화한 주자학을 국가통치이념으로 받아들인 조선의 선비들은 의(義) 즉, 바름 바르게 살아감을 특히 강조했다. 벼슬에 나가든 초야에 묻혀 살든 선비라면 누구나 중국 송나라 사람 범중엄이 선비정신의 지표로 제시한 명제 '참된 사대부는 마땅히 천하 사람들이 걱정하기 전에 먼저 걱정하고, 천하 사람들이 즐거워한 후에 즐거워해야 한다'를 사람의 바른 도리(人之正道)로 삼고 실천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조선의 선비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하거나 부당한 세력이 득세할 땐 이에 항거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었으며, 천재지변으로 백성이 궁핍할 땐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상부상조의 미덕을 지닐 수 있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조헌은 금산싸움에서 '오늘은 다만 한번의 죽음이 있을 뿐이다. 죽고 살고 나아가고 물러남을 의(義)자에 부끄러움이 없게 하자'며 장렬하게 싸우다 모두 전사했다.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고 단종을 유배시키자 지조있는 선비들은 죽음으로 항거하거나 분연히 벼슬을 버리고 초야로 돌아갔다. 사육신과 생육신이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TV로 극화돼 세인의 관심을 모은 바 있는 최인호의 소설 '상도'의 주인공 임상옥은 재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모두 환원한 후 자연인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냄으로써 선비정신을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 주었다.

명망있는 사대부 가문에서는 흉년이 들면 쌀뒤주를 집밖에 내놓고 가난한 사람들이 퍼가게 하거나 나눠 주었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은 옛 선비들과는 다르게 이(利)를 앞세우고 의(義)를 멀리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오히려 개인이익의 극대화를 미덕으로 여기고 이(利)보다 의(義)를 우선시하며 살던 선비들의 삶을 봉건시대의 잔재로 폄하해 왔다.

그러나 개인이익의 극대화가 몰고 온 여러 가지 사회적 병폐와 갈등의 심화는 이제 거꾸로 근대화 이후 자유와 평등이란 구호아래 외면해 왔던 의(義)의 정신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의 현재적 삶을 한번 살펴보자.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후기산업사회의 우리 도시인들은 나와 너, 이웃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공동체 의식은 날로 희미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옆집에 사람이 숨져 며칠씩 모르고 지내다가 발견돼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금전으로 환산하는 경제제일주의 사고는 돈 되는 것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게끔 사람을 몰아붙여 인격이나 인품마저 상품화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주부가 자식의 학비를 벌기위해 퇴폐업소에 나가고, 청소년 성매매가 일상사가 되고 있다.

"부자되세요". 한 기업의 광고 카피서 시작돼 한때 각종 모임자리서 유행했던 인사말은 우리사회의 가치관 전도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최근 대통령의 두 아들이 구속되기까지에 이른 각종 게이트 의혹사건도 의(義)와 이(利)를 뒤바꿔 살아가는 이 시대 지식인들의 가치관 전도의 삶이 빚은 결과이다.

이 사건에 관계된 정치인 공직자 기업가들이 천하사람들 보다 먼저 걱정하고, 천하사람들이 즐거워한 후 즐기는 선비정신을 조금이라도 가졌더라면 한통속으로 난마처럼 뒤얽혀 주거니 받거니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는 선비가 살던 시대의 삶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국제경쟁시대에 옛 선비들처럼 삼년시묘를 다시 시작할 수도 없는 일이며, 부모 모시기를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며, 어두워지면 잠자리를 봐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인사를 드리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나 이대로 뒷짐 진 채 떠밀려 갈 수도 없는 일이다. 서구기술문명의 획일적 세계화 속에서 인간적 삶을 되찾고 민족 문화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살아남으려면 싫건좋건 우리는 전통문화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전통문화를 재창조해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활용하고 세계에 널리 내놓아 서구중심문명의 횡포에 맞서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근대가 중세를 넘어서기 위해 고대의 역사와 문화에서 교훈을 찾았듯이 투철한 선비정신으로 우리의 전통문화유산을 더욱 심도있게 탐구하는 노력이 요청된다.

우리는 13∼15세기 중세때 건국의 시조를 칭송하는 고대 영웅서사시의 전통을 되살려 민족서사시 '동명왕편'과 '용비어천가'를 새롭게 지어 민족의 각성을 일깨우고, 17∼19세기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에는 중국에서는 포기한 기(氣)철학을 심화 발전시켜 동아시아 사상 혁신을 선도한 전력이 있다.

우리가 국문학자 조동일 교수의 작업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최근 서구중심의 세계문학사를 한문.산스크리트.라틴.아랍어 4대문명권 전체의 관점에서 다시 써 지금까지의 세계문학사를 온통 뒤집어 놓음으로써 우리들에게 충격을 주고 사상혁신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최종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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