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시절 중국 명나라에 성절사(聖節使)로 파견갔던 고득종이란 사신은 조선 왕조 역사상 가장 비정치적인 듯한 간단한 실언 한마디에 유배까지 당한 사람이었 다.
그의 실언은 '세종대왕께서 오랑케의 잦은 국경침범으로 밤낮없이 조심하시느라 소갈병(당뇨)을 얻은데다 안질까지 나셨는바 중국의 좋은 약재가 있으면 얻고저 한다'는 한마디였다.
왕의 건강을 염려하는 충정에서 뱉은 말이었으나 상대가 명나라 관리였다는 이유 로 충정의 실언이 '국가기밀 누설죄'가 돼버린 것이다. 왕의 건강은 바로 국가 기 밀이란 정치.외교적 인식과 논리는 500여년이 지난 요즘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구 소련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독일을 방문했던 70년대만해도 미국 중앙정보국(CIA )은 브레즈네프가 묵은 호텔방의 아랫층을 몰래 빌린뒤 화장실 배관을 통해 브레 즈네프의 용변을 채취했다. 그의 건강 상태와 언제쯤 죽을지(?)를 체크하기 위한 공작이었다고 CIA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한나라당 김 모 국회의원이 김대통령의 건강을 두고 유고(有故) 운운한 실언으로 끝내 당직 사표를 냈다. 사실 정치인들의 입씨름이 아니더라도 DJ의 건강은 근년 들어 자주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1월 연두기자 회견때도 피곤에 지친 모습이 방영된 뒤 건강이상에 대한 문의 가 빗발쳤다는 보도가 있었고 건강얘기가 나올때마다 청와대는 주치의 진단까지 인용해가며 이상없음을 브리핑 해왔다.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DJ 본인 스스로도 말 했듯이 대통령의 건강은 왕조시대 구중궁궐에 감춰진 왕의 건강과 달리 국민들에 게 '감출 수 없는' 문제다.
솔직히 요즘 TV에서 드러난 DJ의 모습은 한마디로 초췌하다. 화사한 분장뒤에 묻 혀있는 그늘진 표정에서 잇단 실정(失政)에 따른 피로함과 두자식을 감옥에 보낸 아버지의 쓰라린 부정(父情)이 숨길 수 없이 묻어난다.
국정에 대한 비판적 감정을 떼놓고 본다면 마냥 안스럽고 인간적인 연민마저 느껴 진다. 지금 국민들은 그런 김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어느 정도 인지 깊이 알지 못 한다. 그저 TV나 축구장에서 보는 모습에서 '느낄뿐' 의학적으로는 유고가 생길지 아닐지 하는 깊이까지는 모르고 있다. 그야말로 국가기밀처럼 아픈데가 있다해 도 굳이 병명까지 알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다만 바라는 것은 임기말까지 영육간에 끝까지 건강하고 인간적으로는 임기후에도 오래오래 건강해 줬으면 하는 것이다. 국정이 이처럼 얽히고 흐트러져 있을수록 지도자의 건강, 특히 판단력과 예지력에 관한 정신건강은 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DJ의 주변조직관리와 어이없는 실정의 스타일을 보면 과거의 DJ답지 않다는 느낌을 가질때가 많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그의 육체적 건강보다는 정신적 건강, 판단력 같은 쪽을 염려한다. 어제 기자간담회에서의 발언과 의지를 보면 상황판단 력과 현실인식능력에서 여전히 문제가 있어 보인다.
아태재단 포기거부가 그렇고 아들들의 비리에 대한 해명방식에서도 비우는 마음의 여유가 보이질 않았다. 건강은 마음의 평화에서 온다는 상식을 노회한 팔순의 그 가 모를리 없을텐데…. 여전히 그는 마음하나조차 확실히 비우질 못하는 것 같다.
지도자의 정신력과 판단력이 흐려지고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 등을 계속 쏟아내 놓 을때 나라와 국민이 불필요하게 감당해야 할 불편과 피해가 있다면 그것은 국가기 밀이라고 덮어두고 있을 수 만은 없는 일이다.
민초들의 주변에는 고령과 관계없이 판단력과 예지력이 탁월한 조직의 지도자들을 많이 본다. 그들 대부분은 노욕을 벗음으로써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이다. 김대통 령도 아태재단유지, 정권 재창출, 주변 챙겨주기 같은 정치적 집착을 접고 마음을 더 비워야 한다.
그래서 정신력을 가다듬어야 한다. 좋든 싫든 지도자로 뽑아놓 은 DJ가 건강해야 나라도 함께 건강할 수 있으니까. DJ님 부디 마음 좀 비우시고 건강하세요.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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