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장파일 이곳-도심의 비둘기떼

오랜 세월 비둘기는 사람들에게 평화의 상징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도심에 비둘기 떼가 급증하면서 한번쯤 자동차 유리창이나 지붕에 묻은 비둘기 배설물 때문에 기분을 망쳐본 사람들도 적지 않다.

또 애써 빨아놓은 빨래나 집 옥상에 분별 없이 내갈긴 배설물은 주부들의 속을 긁어놓기 일쑤다. 인터넷엔 비둘기를 쥐나 닭보다 못한 새로 비유하는 네티즌들의 글들도 많이 올라있다. 비둘기에 대한 시민의 인식은 이제 점점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틈이 많아서 비둘기가둥지를 틀기 좋은 건물 아래 인도는 희거나 거무튀튀한 비둘기 배설물 탓에 발 디딜 곳 찾기조차 힘들다. 그 아래를 무심코걷다가는 질퍽한 분비물 세례를 받기 십상이다.

강산성인 비둘기의 배설물은 건물을 부식시키고 배설물 속에 들어있는 크립토코거스 병원균은 사람에게 뇌막염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또 비둘기 배설물 속에서 검출되는 살모넬라균은 식중독을 유발할 수도 있다.

비둘기 떼의 공습은 빨래나 자동차, 건물, 인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도시의 쓰레기통이나 취객이 쏟아놓은 토사물을 뒤적이던 부리와 발로 온갖 곳을 다 밟고 다닌다.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려고 펴놓은 평상, 각종 음식물을 늘어놓은 시장 난전, 식당 앞…. 도심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는 듯 하다.

요즘 비둘기는 웬만해서 날지도 않는다. 사람이 다가가도 놀라서 달아나는 법이 없다. 어슬렁 어슬렁. 그 표정은 되레 사람더러 '성가시게 굴지말고 멀찍이 떨어져서 걸어!' 라고 외치는 듯 하다. 아예 모가지만 돌린 채 사람을 지긋이 노려보는 놈들도 있다.

"그 뚱뚱한 몸집에 날기나 하겠어?" 대구시내 염매시장에서 장사하는 할머니의 푸념이다. 할머니는 하루 종일 비둘기때문에 짜증이 난다고 말한다. 먹이가 충분해 도심 비둘기들은 살이 오를대로 올랐다. 이 뚱뚱하고 게으른 비둘기들은 사람이 코앞에 다가가야 마지못해 푸드득 날아오른다.

주차할 때 겁없이 버티는 비둘기들 탓에 운전자들은 머뭇거리기 일쑤다."비둘기의 깃털이 일으키는 바람이 얼굴에 와 닿을 때의 찜찜한 기분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한 백화점 판매원의 불만은 그녀만의 불만이 아니다. 많은 바쁜 도시인에게 비둘기는 더 이상 평화의 상징이 아니라 보행의 걸림돌이다.

경상감영 공원 사무소 측은 250여 마리에 이르는 비둘기 떼의 피해를 막기 위해 건물에 비닐을 씌우고 쫓아내지만 몰려드는 비둘기를 막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달성공원도 비둘기 배설물로 인도와 건물이 쉽게 더러워지는 피해를 입고 있다.

전국적으로도 비둘기 떼로 인한 피해는 만만치 않다. 부산 용두산 공원은 2천여 마리에 이르는 비둘기 떼 피해를 막기 위해 자기파 발생기를 설치했다. 서울의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등 고궁과 사찰, 공원 등의 목조 건물에는 어김없이 그물망이 설치돼 있기도 하다.

새들이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살면서 배설물을 뿌려대 단청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도 비둘기는 때때로 사람골치를 썩히는 새로 인식된다. 프랑스에서는 비둘기 떼의 급증을 막기 위해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사람은 3천 프랑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돼있다. 또 각 시마다 매년 수십만 마리의 비둘기를 포획해 가스사 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도심 비둘기들이 온갖 악덕의 상징은 아니다.

한갓진 공원 벤치에 앉아 모이로 비둘기를 불러모으는 노인에게 비둘기는거의 유일한 친구이다. 또 그 목가적인 풍경은 공원을 찾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싱겁게 달아나지 않고 눈앞에서 애교를 부리는 비둘기들을 보며 아이들은 까르르 행복한 웃음을 터뜨린다. 음식물 쓰레기나 해충을 먹어치우는 도시의 청소부 역할도 해낸다. 게다가 포르르 떼지어 날아가는 비둘기는 확실히 삭막한 회색 빛 도시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조류보호가인 최동학 원장(동인가축병원)은 "비둘기는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는 새임에는 분명합니다. 문제는 그 수가 너무 불어났다는 것입니다".최 원장은 시민들이 비둘기를 쥐처럼 세균이나 옮기는 새로 인식하기 전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적정한 비둘기 숫자파악과 체계적인 개체 조절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대구시의 경우 아직까지는 비둘기로 인한 피해 신고가 없고 따라서 비둘기 숫자에 대한파악도 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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