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천황을 알면 일본인이 보인다

솔직히 우리는 일본을 잘 모른다. 일본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월드컵을 일본과 공동 개최했다고 하지만 일본인의 실체, 정서를 귀동냥 수준에서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인의 가슴 깊은 곳에는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지 않은 뭔가가 있는 것 같다. 혐오감 두려움 피해의식 때문일 수도 있다.

특히 천황의 존재는 일본을 제대로 아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지위높은 사람을 그다지 존경하지 않는 우리로서는 천황을 신(神)처럼 존경하고 경배하는 일본인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메이지 천황'(明治天皇.다락원 펴냄)은어쩌면 일본인의 정서를 읽어내기에 가장 적합한 책인지 모른다. 단순히 일본 천황의 존재 이유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격렬한 일본 역사를 이끌기도 하면서 때로는 그 역사에 끌려가는 '절대자'의 모습을 비춰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메이지 천황(1852∼1912)의 일대기를 그린 책이다. 그가 재위한 시기는 일본이 자그마한 섬나라에서 유신을 거쳐 세계무대의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때였다. 앞서 500년간 군림하면서도 막부정권에 의해 궁성 밖 출입조차 못했던 역대 천황과 달리, 메이지유신후 실질적으로일본을 통치한 행운의 왕이었다.

역사적으로는 메이지유신, 신문물도입, 청일전쟁, 러일전쟁, 조선병합 등 굵직굵직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그는 갖가지 역사적 격변기에굳건한 버팀목이 됐기에 일본인들에게 영국의 빅토리아여왕, 러시아의 표트르대제처럼 '대제(大帝)' '성천자(聖天子)'라는 칭송을 받았을 것이다.

천황을 신비한 존재로 만들기 위한 일본인들의 시도는 자료와 기록의 빈약함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궁정의 공식기록인 '메이지 천황기'에도 인간의 면모와 사생활을 파악할 수 있는 단초가 전혀 없다. 국가적 대사를 앞두고 천황이 스스로 목소리를 낸 적도 거의 찾을 수 없다.

저자 도널드 킨(미국 컬럼비아대 명예교수)은 광범위한 자료수집과 꼼꼼한 분석을 통해 메이지 천황의 실체를 어느 정도 복원했다."메이지천황은 내적인 정신력이 갖춰져 있었으며 그때문에 스스로 만들어낸 행동의 규범에서 일탈한 적이 없었다.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없었고, 가장 총애하는 중신인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의사에게 암살됐을 때도 '음'하고 답변했을 뿐이었다". 어쩌면 이전의 무사계급이 신분만 바꾼채 여전히 국가를 지배하고, 천황은 상징적으로 군림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천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이 잘 기록돼 흥미롭다. 특히 우리나라 관련 부분에서 민비, 대원군, 안중근, 고종 등숱한 한국인들의 인물상과 행적이 자주 등장하고, 일본의 당시 한반도 정책과 분위기를 구체적으로 묘사해 놓았다.

600쪽에 달하는 상.하 두권의방대한 분량이지만, 일본(혹은 일본의 조선병합 과정)을 제대로 알려면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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