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하와이 이민에 얽힌 한인들 이야기

60, 70년대 한국인들에게 중동 사막이 한몫 잡을 수 있는 '금산(金山)'이었다면, 20세기 초 한인들에게는 태평양 한 가운데 섬 하와이가 금의환향을 보증하는 '약속의 땅'이었다.

1903년부터 3년동안 일본의 중지명령이 있기까지 7천여명의 한인들이 이민을 떠났다니, 당시의 하와이 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100여년 하와이 이민사는 나라잃은 민족들이 '유랑생활'의 탈출을 위해 고된 몸부림을 친 노정으로 출발했다.새책 '아메리카로 가는 길-한인 하와이 이민사'(웨인 패터슨 지음, 정대화 옮김/들녘)는 특이하게도 외국인이 저술한 한인들의 하와이 이민사다.

한인 하와이 이민에 얽힌 시대적 배경, 이민의 고비.좌절, 이민중지를 위한 일본의 책략, 그리고 한국 이민과 관련한 쟁점들을 국제적인 시각에서 분석했다.

하와이 이민의 첫 출발은 하와이 섬 사탕수수농장의 부족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시작됐다. 19세기 말 아시아계로선 처음 하와이에 발을 디딘 중국인이 '중국인 이민 금지법(1882년)'에 의해 문이 닫히고, 일본인 노동력이 유입됐지만 그 수가 절대부족했다. 한인은 그 대체인력이었고, 성실한 한인들에 반한 농장주들이 한인 이주를 부추겼다.

"좋은 가문의 한국인들은 교육열이 강한 나머지 자녀교육을 위해 천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알렌 주한 미국공사, 19세기 말)". 한인들은 큰 돈을 버는 것 만큼이나, 보다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에 하와이로 몰렸다.

한인 하와이 이민은 그러나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일본정부는 1905년 한인 이민금지를 강제했고, 우유부단한 조선의 정부는 자신의 국민을 돌보지 않았다. 이는 모든 외교권이 일본에 넘어간 탓이기도 하다. 농장주들의 가혹한 노동착취에 대한 파업은 생각지도 못하고, 낮은 임금을 감수해야 했다.

저자는 조선 말기 한.일관계의 불평등성을 강조하면서, 결국 하와이 이민이 사탕수수 농장주들의 이권확보에 기여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당시 알렌 주한 미국공사가 한인 이주를 위해 조.중.일 각 나라에 개입했던 것 역시 미국 '달러외교'의 고전이었다고 덧붙인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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