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감은사 동탑 유감

"사실 유적발굴도 파괴행위지요. 내가 얼마만큼 발굴에 충실했는가 생각할 때마다 두렵습니다". 33년 고고학 외길을 걸어온 조유전 국립문화재 연구소장의 지난달 퇴임 소회(所懷)다. 백제 무령왕릉과 풍납토성, 경주 황룡사터 등 고고학을새로 쓸 정도의 대발굴의 참여자요 지휘자였던 그의 감회는 후학들에게 커다란 '반성'의 화두를 던진 셈이다.

▲그래서 여전히 그의 지론은 '발굴'보다 '보존'쪽이다. 원칙적으로 유적은 그냥 그대로 두는 게 최선이다. 국보 112호 경주 감은사 동탑(3층석탑)의 해체·보수·복원과정과 복원 이후의 상황에서 그의 말은 천금(千金)임이 새삼 확인됐기 때문이다. 1천300년의 풍해와 관리소홀로 훼손정도가 심각해 "근본적 보수가 필요하다"는 것이 96년 당시의 해체 사유였다.

그러나 당국과 일반의 관심은 '보수'자체보다 해체작업에서 발굴된 금사리함 등 국보급 유물에 쏠렸고 언론도 덩달아 춤을 췄다. 불공보다 젯밥이었던 것이다. 그 감은사 동탑이 복원 6년만에 탈이 났다. 아니, 작년 봄부터 말썽이 시작됐다. 그것이 이달 들어 탑의 주요부분인 1층 지붕돌(옥개석) 일부가 몸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몇조각씩덩어리져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부실복원의 논란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감은사는 삼국통일을 완성한 신라 문무왕이 불력(佛力)으로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경주의 해상관문인 감포에 지었고, 그래서 호국사찰이다. 그러나 문무왕은 완공을 못본 채 죽었고, 아들 신문왕이 그 2년후 682년에 완성하면서부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절이름을 감은(感恩)이라 지었다. 이 절터가 바라보는 감포 앞바다에 문무왕 수중릉(대왕암)이 있고, 동해를 지키고 있는 사연이다. 대웅전 앞에 지은 동·서 쌍탑 또한 높이 13m로 국내 최대의 돌탑이다.

거대한 절집들은 예전에 불타고 없지만 이 탑들 때문에 관광객이 몰린다. 그래서 지붕돌이 부서진 사실도 지난 8일 관광객이 경주시에 신고한 덕분에 알았다. 복원할 때도 원래처럼 탑 몸체안에 자갈을 채우기 때문에 몸체의 하중과 풍화(風化)가 파손의 공범이라는 주장도 있고 '풍화' 단독 범행이란 의견도 있지만 이 문제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발굴의 공(功)은 있되 훼손의 책임은 아무에게도 없는 것이다.

▲기실 이 감은사 동탑은 훼손·붕괴위험 주장 때문에 해체하고 보수한 것인데, 정작 해체해보니 기가 막히게도 덮개돌과 지붕돌 사이에 홈까지 파서 연결고리를 끼워 고정시키는 등 붕괴위험은 전혀 없었다는 뒷얘기도 당시에 나왔었다. 결국 잘못 건드려서 더 망치는 수난이 잇따르고 있는 꼴이다. 석굴암도 그 대표적 사례다. "유적은 원칙적으로그냥 그대로 두는 게 최선"이라는 조 소장의 말씀이 새삼스럽다.

강건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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