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한동안 존경할만한 사람을 찾아 헤맨 적이 있다. 대학 초년 시절까지도 간간이 그런 노력을 하다가그 이후론 더 이상 그런 의식적인 노력은 하지 않게 되었지만, 지금도 사람을 만날 때면 그 사람이 혹시 그 당시가졌던 기준에서 존경할만한 사람인지 마음속으로 헤아리곤 한다.
"네 그릇은 요만하고 내 그릇은 이만큼 크니 너는 조금 먹고 나는 많이 먹는 게 당연하다"는 '그릇론'을 주장한 어느 장군의 말이 비록 내 자존심을 상하게는 했지만오히려 진솔하게 들린 것은 당시에 찾아뵌 많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말에서 적잖은 위선(僞善)을 느꼈기 때문이다.
표본추출이 잘못되었다는 희망을 지금도 버리지 않고 있지만, 그 당시 존경할만한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존경할만한사람을 찾는 의식적 노력을 점차 하지 않게 된 것은 나에게도 현실적 삶의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내가저들의 처지에 있으면 과연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존경의 기준이 달라진 것이다.기준이 달라진 만큼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본받을만한 사람은 많아졌고, 한편으론 내 잘못된 행동을 합리화하기도 그만큼 쉬워졌다.
장상 총리서리의 지명을 계기로 사회지도층의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행동이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어떤 이는 이들의 행동을 도덕불감증 내지는 양심불량증이라 하지만, "총리가 될 줄 알았다면 아들의 미국 국적을 포기했을 것"이라는 장 총리서리의 말과 한국국적을 다시 회복하겠다는 큰아들의 말은 무엇이 도덕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양심에 찔리지 않는 것인지는 안다는 걸 의미한다.
위선은 속마음을 감추고 겉으로는 도덕적·윤리적으로 올바르게행동하는 것이고, 남이 안보는 혹은 안볼 곳에서는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보이는 혹은 보일 곳에서는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사회지도층은 도덕불감증이 아니라 위선으로 꽉 차있기에 개선의 여지가 있다. 위선자(僞善者)는 안 보이는 곳을 없애 버리면 선(善)밖에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이제는 대통령을 포함한고위공직자 및 그 친·인척에 대해서는 시선(視線)의 공공성(公共性)은 어느 정도 확보된 것 같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고위공직자에대한 인사청문회제도도 마련되어 있고, 최소한 정권 말기에는 대통령의 아들들도 구속되지 않는가? 이런 시선의 공공성은 우리 사회에서 그래도 아직은 사회지도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나를 비롯한 대학교수들에게도 필요하리라.
사회지도층의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에게 의식개혁을 하라고 외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감시의 눈길을 확장하고 늦추지 않고 더 나아가 엄격한 처벌을 하여 그들을 돕는 것이 필요하다. 시선은 마주치면 따갑지만 외면하는 이들에겐 아무런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공직자를 포함한 사회지도층의 각종 비리와 부패를 막을 이러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은 한시가급하다. 월드컵 4강 신화로 달아오른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국민적 열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정치권에서 이제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국민들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외친 것처럼 함께 큰 목소리로 부정부패를 막을 제도적 장치의 마련을 정치권에 요구해야 할 것이다. 축구에서의 승리보다 정치에서의 승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최초의 여성 총리! 분명히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공직자의 도덕성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여성이 총리에 인준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사회가 위선에서 도덕불감증으로 더 타락하는 것을 막는 것이리라. 대통령이 탈당한 민주당은 이제 더 이상 여당이 아니다.
청와대의 눈치를 보면서 총리서리를 보호하려고만 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나라당도 혹시라도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손녀 원정 출산 논란이나 여성 표를 의식하여 인사청문회의 강도를 늦추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럴 경우, 여성 표 확보에도 결국은 도움이 안 될 것이다.
다음 선거에서 당선될 대통령은 누구든지 최초의 여성 총리 탄생 가능성에 보낸 국민의 기대를 잊지 말고 아무쪼록 빠른 시기에 여성 총리를 탄생시켜 그가 자율성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준표〈영남대학교 정행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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