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의도 통신-잠복한 지역 대결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결정되면서 정치판의 영.호남 지역대결 구도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호남의 지지를 업은 영남출신이 대통령 후보로 등장, 영.호남 대결구도의 명분이 사라진 때문이다. 게다가 노 후보가 부산을 중심으로 한 영남에서 아직 기대만큼의 약진을 하지 못하는 점도 지역대결 구도에 대한 왈가왈부를 멈추게 하고 있다.

◈선거때면 표로 부활

그렇다면 지역간의 싸움은 끝이 났을까. 며칠전 한나라당 의원, 지구당위원장 부인 모임에서 "노 후보와 DJ의 단절을 절대 허용해서는 안된다. DJ=노무현=부패정권, 이 공식을 잘 명심해야 한다"고 한 박희태 최고위원의 말은 이 물음에 대한 즉각적인 대답을 주저하게 한다.

물론 박 최고위원의 발언 의미는 '부패정권을 용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겠지만 '후보의 출신지역'에 따른 지역대결 대신 'DJ에 대한 정서'를 기준으로 한 지역 대결구도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유권자들의 투표성향을 놓고 지역대결 구도의 부활 가능성을 강조하는 이도 있다. 박근혜 미래연합대표는 18일 지난 지방선거에 대해 "유권자들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놓고 누가 싫으냐를 판단, 선택한 결과"라며 "지역기반이 약한 군소 정당의 자리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역기반이 탄탄한 다수당 중에서 누가 좋으냐가 아니라 누가 더 싫으냐가 유권자의 판단기준이었다는 분석이다.

강재섭 최고위원은 사석에서 "대선까지는 대구.경북의 압도적 지지세가 그대로 이어질 것이지만 민심의 변화는 6개월이면 충분하다는 점을 이회창 후보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대선 후 지역민심이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TK의 반 DJ 정서가 워낙 강해 대선까지는 그대로 이어질 것"이란 예측이다.

◈결국 영.호남 모두 멸종

지역구도의 현재진행형을 보여주는 예는 또 있다. 한나라당에서 호남 사람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며 호남지역 기자들의 발걸음도 드물다. 민주당에 적을 둔 영남사람들은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

지난 16대 총선당시 "옥쇄하는 일이 있더라도 모두 출마하자"고 정치적 패배를 각오했던 TK출신 민주당 인사들중 잔류여부를 놓고 고심하는 이가 적지 않다.

지역출신 중앙부처 중견공무원은 "정치적 선택을 두고 영.호남이 벌이는 대결의 가장 큰 피해자는 영.호남이고 어부지리는 서울을 비롯 여타지역이 차지한다"고 지적한다. 영남 정권이 호남사람을 밀어내고 호남 정권은 영남사람을 배척하다 보면 결국 영.호남 모두 멸종한다는 것이다.

연말대선의 결과가 다시 지역대결 구도에 의한 선택으로 이어진다면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 될수도 있을 것이다.

서영관 정치2부장 seo123@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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