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내 기간투자가-증시안전판 역할 못한다

기관투자가는 외국인, 개인과 함께 국내 증시의 3대축 가운데 하나이다. 기관투자가가 제 역할을 다 하고 증시 안전판 역할을 하지 않고서는 국내 증시의 건전성이 확보되기 어렵다.

그러나 과연 현재 국내증시에서 기관투자가의 위상은 어떠한가.증권투자 경력 20여년의 한 투자자는 국내 기관투자가를 가리켜 "작전세력.외국인의 뒤 설거지꾼"이라는 극단적인 표현마저 썼다.

그는 "시황을 분석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자기 돈이 아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도덕적 해이마저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파는 것'이라는 증시 격언과 달리 기관투자가들은 고점 부근에서 사서 상승세가 꺾인 뒤에도 매도 타이밍을 찾지 못하고 물타기식으로 보유 물량을 늘려 나가는 바람직하지 못한 매매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대신증권이 지난해 9.11 테러 이후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의 누적 순매수 동향을 비교 분석한 결과 외국인들은 지수 480~790선대에서 적극 매수한 반면 790선대를 넘어서면서부터 매도세로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기관투자가들은 480선대부터 710선까지는 대부분 매도로 일관하다가 710선이 지지되는 것을 확인하고서 뒤늦게 사자세로 돌아서는 뒷북치기 투자 형태를 보였다.

기관투자가들은 또 국내 증시가 무차별적으로 하락할 때는 지수 방어에 나서지 못하고 오히려 하락을 부추겨 투자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실제로 지난 6월26일 주가가 54 포인트나 폭락하자 기관투자가들이 대거 '로스컷'(주가가 매입가격에서 일정비율 이상 하락하면 추가 손실을 줄이기 위해 물량을 매도하는 것)에 나서는 바람에 지수가 장중 700선 아래로 떨어지는 추가 폭락의 악순환이 빚어지기도 했다.

기관투자가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의 투자심리 및 투자 성향이 개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주식은 쌀 때 사 뒀다가 고점에 팔아야 차익을 남길 수 있건만 정작 바닥권에서 기관투자가는 돈 가뭄에 허덕인다. 바닥권에서의 공포감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고객들이 기관투자가에게 돈을 맡기지 않기 때문이다.

모 투신사 대구지역 영업점 관계자는 "주가 바닥권에서 투신사 직원들은 고객들의 환매 요청에 몸살을 앓는다. 주식을 저가에 매수하고자 해도 실탄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상투권'에서는 주식을 더 이상 사지 말고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정석인데도 이 때는 넘쳐 나는 돈 때문에 기관투자가들은 주식을 편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외국인들과 '큰손'들은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이같은 구조적인 한계와 취약성을 교묘히 파고 들고 있다.

이들이 선물과 현물시장을 교란하며 기관투자가들의 프로그램 매매를 유발시켜, 국내 증시를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것은 증시의 공공연한 비밀.

프로그램 매매라는 것이 기관투자가들의 시황 분석에 따른 적극적인 매매가 아니라, 다른 투자주체들이 만들어 놓은 선.현물간 지수 차이(베이시스)에 따른 수동적 매매라는 근본적 한계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기관투자가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투자방식이 장기화되어야 하고 연기금의 주식투자가 더 활성화되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정광주 대구지점장은 "주가 상승 후에야 펀드로 돈이 들어오고 하락시엔 빠져나가는 식의 자금흐름이 반복되는 한 국내기관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며 "국내에서도 주식에 장기투자하는 미국의 401K같은 기업연금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