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쥐똥나무를 바라보다

언제부터 이 나무가 우리 곁에 존재하게 되었을까. 매화나무 옆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키가 석자도 채 되지 않는다. 빈약하고 볼품이 없다.

이 나무가 우리 집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경위를 더듬어 보았지만 알 수가 없다큰 나무를 심을 때, 뿌리 한 가닥이 따라와서 땅에 묻혔는지, 집을 짓기 이전부터 땅속에 숨어 있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품격 높은 매화나무 옆에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그 나무는 우리의 불청객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 나무를 본체만체하였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별렀다. 볼품 없는 이 나무를 뽑아버리자 하고 그 때를 기다렸다.

식물원 남자가 왔다. 나무의 전지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큰 가위를 들고 필요없는 나뭇가지들을 싹둑싹둑 잘라내었다. 신이 나는 듯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힘없이 땅에 내려앉는 나뭇잎들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매화나무의 몸매를 다듬고 있던 식물원 남자가 "여기, 쥐똥나무가 있네" 하고 소리를 쳤다. 이름을 알 수 없었던 그 나무를 두고 한 말이다. 나무의 이름을 처음 듣는 순간 나는 쿡하고 웃음이 나왔다.

나무 단상

쥐새끼, 쥐방울, 쥐똥 등이 의미하는 천박한 느낌이 한꺼번에 떠올라 비웃듯이 그 나무를 내려다보았다. 싸래기 같이 잘디잔 유백색 꽃을 피우다가 가을이 되면 쥐똥처럼 까만 열매를 다닥다닥 매달고 있던 이 나무를 길거리에서 더러 본 것 같기도 하다.

식물원 남자가 쥐똥나무는 정원에 어울리지 못한다고 하며 뽑아버리자고 했다. 더구나 옆에 있는 매화나무와는 격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동의에 따라 즉시 행동을 취하려는 듯 삽을 들고 나무 곁으로 갔다. 나도 따라 갔다.

나의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뽑히어 죽은 존재가 되어버릴 나무, 나의 뜻에 의해 이 세상에서 누렸던 짧은 생애를 마감할 나무, 나는 지금 쥐똥나무의 생살여탈을 쥐고 있다. 한 생명을 삶과 죽음으로 갈라놓을 수 있는 절대자, 내가 그런 존재가 된 것이다.

쥐똥나무를 바라본다. 쥐똥처럼 쾨쾨한 이름을 멍에처럼 매달고 대우받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나무, 그런 처지를 스스로 알고 있는 듯 스쳐 가는 바람결에도 온몸을 떨고 있다. 그 모양새는 힘없는 존재가 어떤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련한 모습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쥐똥나무를 그대로 두세요"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런 선한 마음이 왜 갑자기 생겨난 것일까. 쥐똥나무는 어떤 의미로 변신하여 내게로 다가온 것일까.

그동안 나는 우리 집에 거처를 정하고 있는 생명들, 나무며 풀잎 등을 참 많이 제거하였다. 심지어 땅 밑에 숨어있는 미물인 벌레들에게도 가차없이 힘을 행사하였다. 나는 그것들의 지배자로 자처하며 아무런 아픔없이 이런 일들을 했었다. 그런데 가련하게 떨고 있던 쥐똥나무가 나의 오만한 마음을 무너뜨린다.

지배자 자처·오만한 마음

요사인 자주 층계에 앉아 뜰을 바라본다. 할일 없이 우두커니 앉아있는 나의 눈에 나무들이 차례로 들어온다. 산능금나무, 감나무, 단풍나무 등 큰 나무들이 먼저 보인다. 이런 나무들은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아야 한다.

옥매화, 개참꽃, 쥐똥나무 등은 두 번째로 눈에 뜨인다. 키가 나의 눈 높이 만한 이 나무들은 편안한 자세로 바라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눈앞에 어른거리는 여러 풀꽃들, 그것들을 보기 위해서는 내가 그들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 몸을 구부려야 한다.

쥐똥나무 곁으로 간다. 문득 젊은 시절, 쥐방울 같이 부지런을 떨며 들락거렸던 세상 구석구석이 떠오르기도 하고 어느 여름날이었던가, 비를 맞은 생쥐 꼴이 되어 빗속을 뚫고 달려갔던 나의 꽃길, 그 우기의 비애가 젖어들기도 한다.

쥐똥나무에게 새로운 정을 붙이고 있는 지금 나는 참 편안하다. 유명한 나무들이 보여주던 현란하고 변덕스러운 모습 대신 담백하고 고요한 그 나무가 좋다.

앞으로 나는 쥐똥나무의 이름을 자주자주 불러주며 향기롭지 못한 이름 때문에 언제나 기가 죽어 있는 그 나무에게 새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싶다. 그 젊은 쥐똥나무를 늙어 가는 우리 곁에 데리고 있고 싶다.

-정혜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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