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상덕의 대중문화 엿보기-공중파 에로티즘

남자는 이혼을 꿈꾸며 환상을 만난다. 산 날이 살 날보다 많아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데도 마음은 헛헛하기만 하다. 잠자리에서 다리를 얹는 아내가 싫다.

연애시절은 섹시하다고 말했지만 아내의 다리는 털이 너무 많다. 뒤집혀진 양말을 그대로 빨래하는 아내다. 단추를 달아준 적이 없고 서랍을 정리하는 것도 모른다.

이제는… 내가 남자임을 느끼게 하는 새 아내와 만나고 싶다. 누구를 탓하고 욕하랴. 앞으로도 고통스럽고 아프겠지만 아내와는 헤어지고 싶다.

이혼은 쉬웠다. '헤어지느니 차라리 그대 옆에 남아 무덤이 되고 싶다'던 시인도 낡은 볼펜으로 이혼신고서를 쓰지 않던가. 인생을 막 배운 것 같은 판사가 물었다. "이혼을 원하십니까?" "예" 한마디로 끝이 났다.

지지리도 궁상맞던 대학시절 결혼했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CD 한 장의 호사를 누렸다. 세월이 흘러 남편에게 새 여자가 생겼다.

남편은 눈치채지 못한 아내를 아둔한 여자로 몰아 세웠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보낼 수 없었다. 엄마의 처녀결혼을 위해 버림받은 어린 시절이었다. 엄마처럼 되지는 말아야 했다. 남자를 숭배하겠다며 매달렸다.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이혼을

할 수 있는 네가 부럽다"는 친구의 말은 지나가는 바람이었다. 결국 아내는 결심한다. 남편을 용서할 수 없기에 입양한 딸과 함께 가정을 지켜야 한다. 불나방처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그를 지켜보는 것도 복수를 위해서다.

MBC-TV 월화 드라마 '고백'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침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공중파를 탄다며 흥분하는 시청자가 많다. '에로티즘의 사회적 역기능'을 내세우며 아예 폐지를 검토하자는 네티즌도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비난하지는 마라. 우리들의 성적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것 자체를 나무라서는 곤란하다. 언제까지 우리가 '쿵쿵따~끝말잇기'나 보아야 하나. 웃기지도 않는 '시트콤'을 지켜보는 것도 지겨운 일이다. 물론 대사로만 섹스무드를 조성하려는 제작자세는 지양해야 옳다.

에로티즘의 직선적인 표현으로 프로그램의 선정화를 불러 온 것도 나무라야 마땅하다. 음악, 음향, 색채로도 섹시무드는 충분히 표현될 수 있는데….아내는 두 눈으로 드라마를 보고 나는 곁눈질로 '고백'을 즐긴다. 아내보다 더 큰 목소리로 남자 주인공을 욕한다. 아내에게 미안하다.

한상덕(대경대 방송연예제작학과 교수 sdhantk@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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