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월말 중국으로 가는 항공편은 좌석 예약이 어렵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국적기 뿐 아니라 중국측 민항도 좌석이 없다. 9월부터 시작되는 중국의 새학기를 맞아 어학연수생과 유학생들이 대거 예약을 마쳤기 때문이다. 지역의 중국유학원 관계자들은 "2달전부터 예약에 나섰으나 계속 대기상태"라고 말했다.
중국어 현지 연수 열풍이 거세다. 이 때문에 지역의 중국어 전문학원들이 오히려 불황을 탈 지경이다. 지난 6일 중국 시안(西安)에서 만난 대학 휴학생 김경수(22)씨는 4개월간 어학연수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이었다. 8월에 입대하는 김씨는 "휴학한 김에 잠시 짬을 내 어학연수를 계획했다"고 밝혔다.
그는 "어학연수를 받는 외국인중 한국인이 70~80%였다"며 "9월 학기엔 한국인 연수생이 2배로 늘어난다고 대학측이 귀띔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한국 유학생들이 몰린 지역은 베이징(北京)과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하얼빈(哈爾濱) 등 동북 3성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한국 어학연수생들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중국 내륙지역까지 진출하고 있다. 베이징 등 한국유학생이 많은 지역에선 한국인끼리 부대끼다 보니 중국어 습득이 여의치 않아서다.
특히 '달러 벌이'에 혈안이 된 중국 대학들에게 한국유학생들은 가장 '큰 고객'이다. 유학생과 어학연수생 절대 다수가 한국인이다. 이 때문에 시안지역 대학을 비롯 내륙지역 대학들까지 한국어로 된 대학안내 팸플릿을 만들어 한국 유학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불었던 중국어 학습 열풍이 현지 어학연수 바람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중국유학생 수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9.11테러 사태 이후 미국이 비자발급 요건을 대폭 강화하는 바람에 한국인 유학 및 어학연수생들이 대거 영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래도 주영 한국대사관이 추산하는 유학 및 어학연수 관련 영국 체류자는 2만명 가량이다. 중국의 한국 유학생 숫자는 이를 능가하는 2만5천여명 규모다.
베이징에만 유학생과 교민이 2만여명에 이르러 작게나마 코리아 타운이 형성돼 있을 정도다.중국 관광객 숫자는 더욱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10년전 한.중 수교 직전엔 관광객이 연중 20만명 남짓했으나 올해는 그 10배인 2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게다가 산업공동화를 우려할 만큼 국내 기업의 중국진출도 러시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그만큼 중국어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셈이다.
유학 목적이 아닌 어학연수는 대개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단기다. 김현우(27.계명대 중문과 4년)씨는 지난해 산시(山西)성 타이위안(太原)과 허베이(河北)성 스쟈좡(石家莊)에서 각각 6개월씩, 1년간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중문과 출신인데다 어학연수까지 다녀와 그의 중국어는 꽤 유창한 편이다. 연수지로 베이징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베이징은 한국 학생이 너무 많아서 피했다"고 답했다. 베이징은 수도이고 교육여건이 다른 중소 도시보다 훨씬 낫다.
베이징의 어언문화대학은 외국인들의 어학연수기관으로 가장 이름난 대학. 교육경험이 풍부한 교수진 등 여러 면에서 뛰어난 대학으로 소문나 있다. 하지만 한국 연수생이 많고 연수비용이 비싼 게 단점이다. 5천명 중 2천명이 한국 연수생으로 추산된다. 베이징이공대학 등 한국 연수생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대학들도 이젠 한국인들로 넘쳐나 베이징을 기피하는 연수생이 많다.
군 제대후 지난해 스쟈좡에서 6개월간 어학연수를 다녀온 권혁모(26.계명대 중문과 4년)씨는 "물가가 싼데다 어학연수 비용도 저렴해 중소도시를 찾는 어학연수생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소도시의 강사 자질은 떨어진다. 대학원생 등 비전문인들이 다수다.
권씨는 "한어수평고사(HSK)나 중국대학원 진학이 목표면 베이징.상하이(上海) 등 대도시 지역을 선택하고 단순히 중국어 습득이 목적이면 중소도시가 나을 것"이라고 안내했다. 지난 학기에 6개월 어학연수를 다녀온 이윤찬(20.고려대 공학부1년)씨는 "중국어 습득만이 목적일 경우엔 하얼빈, 다롄(大連), 창춘(長春) 등 동북지역 대학도 좋다"고 말했다. 베이징의 경우 '베이징 사투리'(혀를 굴리는 '얼' 발음이 많음)가 많은 반면 동북지역은 발음이 분명한 표준 만다린어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 어학연수비용은 어느 정도 들까? 베이징 등 대도시는 한 학기 어학연수비로 1천200~1천400달러를 받는다. 중소도시는 800~1천달러 정도다. 이외에 기숙사비와 용돈이 필요하다. 중소도시의 경우 대학 기숙사비는 2인 1실 기준 하루 3달러를 받는다. 여기에 새벽 4시간 수업후 오후엔 중국인 개인과외까지 받는 사람이 적지않다.
개인과외비까지 합치면 얼추 1년 어학연수비로 1인당 1천만원가까운 경비가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게다가 중국 대학측은 어학연수비와 기숙사비를 해마다 인상하고 있다. 달러가 대접받는 중국이지만 결코 만만치 않는 액수다. 그래도 매년 한국 유학생과 어학연수생이 대거 몰려들고 있어 중국 대학측은 한국연수생들을 '봉'으로 여기고 있다. 연수비와 기숙사비도 위안화 대신 달러로 책정해 받는다.
위안화로 지급하려면 환율을 불리하게 적용한다. 중국어 학습 붐에 편승, 전국적으로 중국어 전문학원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대구지역에서도 지난 88년 대구에선 중국어 전문학원이 1개뿐이었으나 올해만도 서너곳이 개원, 11곳이나 된다. 그러나 현지로 어학연수 떠나는 사람이 많아짐에 따라 경영난을 겪는 곳도 적지 않다.
최근의 조기유학 붐과 관련, 북방 중국어전문학원의 박규열 원장은 "언어는 일찍 배우는 게 좋다"면서도 중국어 조기교육에는 반대했다. 박 원장은 "초등학교 고학년때 중국어를 학습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면서 "중국어를 배우면 한자는 저절로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박 원장이 함께 경영하는 라이라이 중국어 전문학원에서 만난 어린이들도 대부분 초등학교 5.6년생이었다.
계명대 출신의 김현우씨도 타이위안(太原)에서 어학 연수를 받을 때 "초교생과 중고생 자녀를 2명씩 데려와 연수중인 어머니들이 있었다"며 "어린 자녀들을 혼자 유학보내는 건 위험하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싼 물가탓에 한국학생끼리 어울려 흥청망청 놀기가 십상이라는 것이다.김씨는 또 "한국어로 된 중국역사 및 문화 서적이라도 반드시 읽고 가라"고 충고한다. 중국에 대한 사전지식이 풍부해야 중국인들과 수준높은 대화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조영창기자 cyc1@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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