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뻐지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는 것은 무죄입니다". 'Be The Reds'라고 적힌 붉은 탱크톱과 블루진 핫팬츠 차림에 태극기를 치마처럼 두른 심민아(25)씨. 멋진 몸매와 패션으로 월드컵 경기장 외신기자들의 카메라 렌즈를 집중시키며 네티즌들에 의해 일약 미스 월드컵?막?뜬 그녀는 당당하게 말했다. "눈.코 부위 성형수술을 했습니다".
월드컵 거리응원으로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새롭게하면서 국운상승의 전기를 마련한 자랑스런 R세대는 외모에 대한 생각도 이렇게 거침없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이들에게 쌍꺼풀 수술은 필수이고 코나 턱 수술은 선택에 불과하다.
학부모 전우희(40.대구시 수성구 신매동)씨는 "요즘은 초등학생들까지도 제1의 관심사가 외모"라며 "초등학생이 귀걸이를 하고 다녀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고 실소한다. 오죽하면 청소년들 사이에 '성질 더러운 건 봐줘도 못생긴 건 못 봐준다'란 말이 오갈까.
중3 기말고사를 마치면 쌍꺼풀 수술을 하기 위해 성형외과가 북적대고, 방학되면 염색하느라 미장원이 터져나간다는 얘기들이 빈말만은 아닌듯 하다. 대구는 그래도 보수적인 편이라 좀 덜하지만 꽃미남이 등장하고 성형계가 유행하며 수술비를 대출해주는 금융기관까지 생겼다는 말들이 신문지상에 활자화되기도 한다.
이무상 성형외과 전문의는 "수능시험 바로 다음날을 예약할 만큼 고3 겨울방학은 특히 성형수술의 적기로 꼽힌다"며 "고객들의 연령도 점점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남자들도 전체 성형환자의 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성형외과를 찾는 R세대 여성들의 보호자도 어머니.언니에서 남자친구로 바뀌었다. 남자친구가 오히려 특정 부위의 성형을 권하기도 하며, 애인의 성형수술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정보교류에 나서기도 하는 이들에게 성형은 이제 화장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R세대의 화려한 데뷔 이면에는 외모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멀쩡한 몸이 멍들어 가는 사례도 없지 않다. 도심 거리에 성형미인이 자꾸만 늘어나는 것을 보며 기성세대들은 우려의 눈길을 보낸다.
전문학자들도 젊고 예쁜 여성들일수록 성형수술에 더 집착하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인 미(美)를 절대적인 기준에 맞추려는 사고에서 비롯된 오류임을 지적하기도 한다. 영남대 심리학과 장현갑 교수는 "특정 연예인의 얼굴이나 인기 모델의 몸매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다보니 많은 여성들이 성형수술에 매달리고 그만큼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고 했다.
특히 청소년기는 확실한 자아가 확립되지 않아 자신이 영웅시하는 인물의 모습과 행동을 닮으려는 심리적인 기저가 있지만, 이것이 다름아닌 심한 신체적 왜곡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아름다움(美)은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남다른 개성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 만큼 성형수술을 미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만능의 열쇠로 착각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최태진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성형수술 결과에 대해 환상을 가지거나, 남들이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본인만 스스로를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신체 이형화 장애'의 경우도 없지 않다"고 지적한다. 지나친 다이어트 열풍도 문제다. 여중생이 벌써 수십만원짜리 다이어트 식품을 찾을 정도이다. 여학생이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장나라(40kg.연예인) 따라하기'가 유행하면서 멀쩡한 체중과 몸매를 줄이기 위한 억지 다이어트가 유행하고 있다.
박성찬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비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전체의 5% 밖에 안되는데도 이상 다이어트 바람이 불고 있다"며 "비만 클리닉을 찾는 일부 여성들이 거식증 .폭식증 등 다이어트 부작용이나 자기 신체를 혐오하는 정신장애를 나타내기도 한다 "고 밝혔다.
멀쩡한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 심화에는 이를 부추기는 매스컴의 영향도 크다. 수입에만 혈안이 돼 과잉진료를 일삼는 일부 의사들도 문제다. 월스트리트저널지 등 외국 언론에 기이한 현상으로 보도되는 우리나라의 광적인 성형수술 성행이 남보기에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성형수술과 다이어트 성공으로 자신감있는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례도 없지 않다. 대구시내 야시골목에서 옷가게를 하는 권모(27.여)씨는 "눈과 코.턱을 성형하고 12kg을 감량한 후 인생이 달라졌다"며 "이곳저곳에서 밀려드는 상담문의 때문에 본의 아니게 '성형 코디네이터'가 됐다"고 털어놓았다.
요셉성형외과 이영주 원장은 "최근에는 사각턱 교정을 위한 저작근 보톡스시술(주사요법)이 주목을 끌고 있다"며 "턱뼈를 깎지 않고도 외모에 대한 컴플랙스를 해소할 수 있는 시술법에 솔깃한 것이 여성들의 솔직한 심리"라고 밝혔다. 이같이 청소년과 젊은 세대의 외모에 대한 관심과 성형.다이어트 붐은 자기 PR시대에 스스로를 아름답게 꾸미려는 것으로 전부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없지않다.
ㄱ대 컴퓨터공학과 김종철(21)씨는 "좀 튀고 싶어서 머리 염색을 하고 귀걸이를 했을 뿐, 여느 대학생과 생각이 다를바 없고 또 나이가 들면 바뀔수도 있다"며 "머리에 색깔을 좀 넣었다고 불량학생인양 색안경을 끼고 보지말아 달라"고 한다. 과거의 장발 유행이나 지금의 꽁지머리 유행과 다를바가 없다는 얘기다.
경산대 한상철 교수(청소년문제연구소장)는 "일부의 지나친 신체 왜곡에 대한 걱정이 없지는 않지만, 성형과 다이어트를 너무 심각하게 해석하거나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나팔바지나 배꼽티가 유행해도 큰 문제가 없었듯이 시대조류에 부흥하거나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한 양식으로 보아 넘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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