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삼국지 明末에도 출판경쟁

1천년간의 베스트셀러, 삼국지(三國志). 영웅호걸의 의리와 배신, 기기묘묘한 책략, 박진감 넘치는 싸움…. 독자의 시선을 잡아채기에 이만큼 완벽한 요건을 갖춘 책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탁월한 스토리가 하루 아침에 만들어졌을까. 삼국지의 영광(사계절 펴냄)은 천년에 걸쳐 삼국지가 형성된 과정과 배경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 김문경(교토대 인문과학대학연구소 교수)씨는 "제갈공명과 사마중달의 싸움부터 전설로 회자되기 시작, 군가(軍歌), 연극, 이야기, 그림책 등으로 보완.발전돼 정교한 구성의 삼국지가 됐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이유는 '3(三)'이라는 숫자 때문?=삼국지에는 '3'이라는 숫자가 수십차례 등장한다. 유비.관우.장비 3명의 의형제, 장각.장보.장량의 황건 3형제는 물론이고 '삼고초려' '세번 서주를 양보하다' '공명이 조운에게 세 비단주머니의 계책을 주다' '여포와 세번 세우다' 등등….

'3'은 중국인의 세계관, 우주관을 나타내는 특별한 의미의 숫자다. 숫자를 1, 2와 3이상으로 분류한 고대 중국인들은 3을 무한대에 이르는 수를 대표하는 것으로 믿었다. 이 때문에 삼재(天.地.人), 일일삼성(一日三省), 맹모삼천(孟母三遷), '백성은 3(君.師.父)에 산다'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또 '3'은 1~10이란 숫자 중 발음에서 유일하게 평성(平聲.높낮이가 없음)에 속해, 숫자의 절반을 대표한다고. 삼민주의, 삼불정책 등 요즘 중국의 정책들도 그들의 전통의식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셈이다.

▲원래 국가고시 수험서?=현재의 삼국지는 원말 명초시대인 14세기에 쓰여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로, 그 내용 중 70% 가까이가 허구다. 정사는 진수의 '삼국지'와 사마광의 '자치통감'인데 명나라때 과거시험의 필수 과목이었다.

수험생들은 난해한 문장과 방대한 분량에 골치를 썩였는데 이때 '통감강목' 등 다이제스트판이 등장,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수험서 수요를 바탕으로 민간에 소설 삼국지가 유행하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유비는 높이고 조조는 낮추시오?=정사인 진수의 '삼국지'는 조조의 위나라를 정통으로 봤고, 사마광의 '자치통감'은 위나라의 정통을 소극적으로 인정하는 듯했다. 유비는 한나라 황실의 후손인지 의심스럽다고 해 촉나라는 아예 언급되지도 않았다.

근데 여진족에게 북쪽지역을 내준 남송시대에 쓰여진 주자의 '통감정목'부터 유비가 정통으로 등장하기 시작, 그 구도가 굳어졌다. 원말 명초에 쓰여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는 유비의 인덕과 공명의 지략을 높이고, 조조의 품성을 교활하게 드러내기 위해 왜곡과 허구가 적절히 사용됐다.

이민족을 축출하기 위한 사상적 무기로 유교사상에 가장 근접하는 촉한 정통론이 채택된 것이다. 배타적인 중화사상이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

▲출판 전쟁은 옛날 중국에도 있었다?=국내 출판시장에 부동의 1위(인세수입)를 차지하고 있는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 최근 '조성기 삼국지'가 "기존 삼국지는 엉터리"라고 외치며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여기에 황석영 장정일 등도 뛰어들 태세여서 삼국지 출판전쟁이 갈수록 가열될 전망이다.

근데 500년전 명말 중국에도 삼국지 출판 경쟁이 치열했다. 유씨, 정씨, 웅씨, 황씨라 불리는 네곳의 출판사에서 삼국지를 내놓았는데 여상두라는 신예 출판업자가 '기존의 삼국지는 모두 엉터리'라고 선언하면서 "독자 여러분은 '쌍붕당'이라는 표시를 확인하고 책을 사라"는 광고까지 했다고.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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