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인들이 보는 늙음

나이가 든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을 노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지금 중년을 맞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은 어느날 문득 깊어지는 잔주름과 흰 머리카락을 보며 '늙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불멸을 믿었던 사춘기 시절에 보았던 옆집 할아버지처럼 서글프고 우울할까. 50여명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로부터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단상을 들었다.

♣ 늙는 것도 괜찮다

생각처럼 서글프거나 우울한 일은 아니다. 늙는 것도 좋은 점이 많다. 생활은 안정되었고 시간은 여유 있다. 밖으로만 돌던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고 할머니를 찾는다. 오늘 해야 할 숙제도 없고 떨어지면 큰 일 날 입시도 없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이 점점 더 재미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문제는 몸이 아프다는 것이다. 70년 이상 충실히 내 명령을 받들었던 몸이 이제는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프다.

♣ 죽는 일만 남았다

점점 주름살이 깊어지고 머리가 빠지고 목소리가 작아졌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사라져 가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점점 많아진다. 노인은 말을 아껴야 한다. 알아도 모른 척 입을 다물고 있다가 물으면 대답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식들은 잔소리로 듣기 십상이고 화를 낸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도 없다. 죽는 일만 남았다.

♣ 청춘을 돌려다오

불로초가 있다면 전 재산을 털어서도 먹고 싶다.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젊음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재산이다. 가끔씩 신문이나 방송에서 젊은 아들이 나이 든 아버지를 위해 간을 떼 주었다는 기사를 읽곤 한다.

그건 미담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인간 존엄성에 대한 훼손이라는 생각도 든다. 늙은 아버지를 위해 젊음을 버린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상한 효자논리로 사람의 존엄성 파괴를 부추긴다.

♣ 홀로된다

출가한 자식들은 한 해에 두 번도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부부가 살아있는 경우는 덜하지만 혼자인 경우 참으로 쓸쓸하다. 친구들은 차례로 떠나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다. 그래서 노인대학, 노래교실, 복지회관 등에 나간다. 늙어서 절이나 교회, 성당에 나가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혼자 있는 시간은 참 두렵고 쓸쓸하다.

♣ 돈이 필요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 만큼 돈이 더 든다는 것을 말한다. 젊은 사람들처럼 쉽게 운전면허를 딸 수도 없고 차를 등록하는 데도 더 많은 시간과 힘이 든다. 시간과 힘을 들이기 싫으면 그만큼 더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

날씨에도 훨씬 더 민감해져 더위나 추위를 피하는데도 젊은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이 든다. 주변에서 구두쇠라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죽는 순간까지 돈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 목청이 변한다

오랜 세월 집을 지켜온 할머니들은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밖으로만 돌던 할아버지들은 작아진다. 할머니들은 케케묵은 원망을 끄집어내고 할아버지들은 시효가 끝난 줄 알았던 '과거'에 발목을 잡혀 허덕인다.

♣ 곱게 늙고 싶다

우리 아파트에 60대 할머니들이 많다. 어떤 할머니는 젊은 여성들처럼 미니스커트를 입고 한껏 멋을 부려 외출하기도 하는데 제삼자가 볼 때는 영 어색하다.

늙기 싫은 것은 인지상정이겠지만 외모를 젊어 보이게 하기 위해 지나치게 자기를 분장(?)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늙어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활기찬 삶의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 노년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지 않을까.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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