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정에 목마른 시대

사람이란 '편리'를 먹고 사는 동물인가. 끊임없이 편리를 추구하고 그 편리의 달콤함에 자신도 모르게 길들여져 간다.오늘 이 순간 당장 전기가 없어지고 자동차가 멈춰서고 컴퓨터가 다운돼 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이후의 상황은우리들 얕은 상상력 밖의 일이다. 여름 날 벼락이 치고 난 뒤 잠시 전기가 나갔을 때의 그 불편함이란....

전기가 끊기고 나면 온갖 문명의 이기가 한순간에 발이 묶여 버린다. 사람들은 이래 가지고는 하루도 못 살겠다고 아우성을 칠 게 뻔하다. 혀끝에 녹아오는 달콤한 설탕이 사람의 몸을 서서히 망가뜨리듯, 순간의 쾌락에 골몰하게 하는 마약이 마침내 영육(靈肉)을황폐화시키듯, '편리'라는 현대적 산물이 우리의 정신을 보이지 않게 나락 속으로 내몰고 있어도 우리는 이걸 알아차리지 못한다.

세상사는 이렇게 편리한 쪽으로만 간단없이 그 방향을 틀어 왔다. 이같은 변화를 듣기 좋은 말로 눈에 보이는 삶의 질 향상이라 해 두자. 그런데 기막히게 필연적인 것은 생활의 편리성의 도(度)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살가운 정은 그에 반비례하여 점점 메말라간다는 사실이다.

시골에 고향을 두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러한 세태의 흐름을 가슴 저리게 느낀 적이 있으리라. 전기.전화 같은 문명의 이기가 들어오고 갖가지 가전제품이며 생활용품들이 도시 못지 않게 그곳의 안방을 차지하면서 지난날의 그 따뜻하고소박한 정을 조금씩 잃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생활도 편리해지고 사람살이의 정도 함께 도타워진다면 그야 얼마나 금상첨화일 것인가. 그러나 불행하게도이 두 마리 토끼를 결코 한꺼번에 잡을 수 없도록 절대자는 인간의 삶을 설계해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째서 생활의 편리와 사람 사이의 정은 정확히 반비례관계에 있는 것일까. 이것이 절대자의 이법(理法)이라면 둘 사이에 의좋게 나란히 향(向)을 하고 걸을 수 있는 길은 정녕코 없단 말인가. 나는 오늘도 이 썩 마음에 차지 않는 원리를, 풀지 못한 화두(話頭)처럼 붙안고 고뇌하며 살아간다.

곽흥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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