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금융권 VIP 마케팅 '뜨끈'

상위 20%의 고객이 80%의 수익을 창출한다는 20 : 80 법칙은 금융회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은행의 자금조달 구조를 보면 1억원 이상의 예금자 계좌비중은 2000년말 현재 전체의 0.29%에 불과하지만 금액비중은 47.34%나 된다.

부유층 고객의 확보와 유지가 금융회사 수익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부자 손님을 끌기 위한 국내 금융권의 경쟁이 한창이다.

30일 문을 연 기업은행 대구3공단지점은 이 은행의 여느 지점에서 볼 수 없는 레이아웃으로 눈길을 끈다. 밝으면서 편안한 느낌의 베이지색으로 마감된 실내가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주며 곡선으로 처리된 창구에는 옆창구와 칸막이가 설치돼 있고, 사이버라운지를 겸한 VIP 상담실을 설치해 놓았다.

전재갑 지점장은 "이제는 VIP고객에 대해서는 금융거래 뿐만 아니라 절세.법률 상담 등 토탈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시대"라며 "고객 유형별로 차별화된 영업전략이 아니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시대상황에 따라 새로운 점포 레이아웃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은 대구3공단 지점을 모델로 전국 380개 영업점에 대한 이미지 변신작업을 단계적으로 벌이기로 했다. 중소기업 전담은행이자 국책은행으로서 보수적 이미지를 지닌 기업은행이 부자손님 유치에 나선데서 국내 금융권에 불고 있는 'VIP 마케팅'의 열풍을 읽을 수 있다.

금융권의 VIP 마케팅은 일명 '프라이빗 뱅킹'(PB)으로 불린다. PB란 부자 고객의 자산을 종합적으로 관리해 주는 금융권 마케팅을 말한다. PB는 국내 거의 모든 금융회사들이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 분야이기도 하다.

95년 PB를 도입한 하나은행은 국내 금융권 가운데 자타가 공인하는 PB의 원조다. 하나은행은 VIP고객 요구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데이터를 구축해 왔다. 실제로 이 은행 대구중앙지점의 옥상에는 간이 골프연습장까지 설치돼 있을 정도다. 대구은행의 경우 범어동지점과 죽전지점 2층에 VIP클럽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으며 지산지점에도 VIP클럽을 개설할 계획이다. 일선 영업점의 레이아웃도 VIP상담실, 상담창구, 빠른창구 등으로 변경하고 있다.

한국투신증권 대구지점도 이달 들어 PB룸 4개를 점포내에 만들었다. 부지점장급 이상 간부 4명이 PB룸에 전담 배치돼 VIP고객에 대한 일괄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투신증권 박덕하 대구.경북지역장은 "금융상품 자체만으로는 고객을 잡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포트폴리오에서부터 세무.법률 상담 등 차별화된 부대 서비스로 승부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금융권의 PB는 전문인력의 부족 등으로 정착 단계에 접어 들었다고는 볼 수 없다.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포트폴리오를 짜주기 보다는 자사 금융상품을 권하는 수단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구지역 금융권 한 관계자는 "VIP고객의 반응을 모니터한 결과 일반 고객에 비해 우대받는다는 느낌만 받을 뿐 재테크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들이 많았다"며 "아직까지 국내 금융권의 PB는 기존 고객의 이탈을 막기 위한 방어마케팅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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