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화가 또 과속이다. 얻어 맞아 때릴 궁리를 하고 있는 우리측의 의표를 찌르듯 장관급 회담 제의와 함께 보내온 '애매모호한' 유감표명을 '명백한'사과로 받아들인지 닷새만에 우리가 이를 수용, 모레부터 실무접촉을 갖자고 통보한 것이다.
이와함께 '식량30만t 제공'이 결정된 듯 터져나왔으니 과속이라도 엄청난 과속이다. 실무회담 도중에 어디서 또 대포가 터지지 않나 걱정될 정도다. 국민의 북한불신, 정부불신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따라서 식량지원보다 '군사적 신뢰'문제가 먼저 라는 국민적 불안감을 향후 남북장관급 회담을 통해 얼마나 가시적으로 씻어내 주느냐 하는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북한이 예상을 깨고 대화제의를 해온 것을 보면 작금의 경제개혁, 식량난, 서해도발의 국제적 눈총 등 국내외적으로 코너에 몰린 상황의 국면전환의 다급성을 읽을 수 있다. 또 우리측이 불감청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는 식으로 화답한 것도 그 속엔 DJ 임기내 '가시적 성과'에 대한 조급성이 읽힌다.
그래서 시작도 전에 경의선 철도 연결, 개성공단 착공, 이산상봉 등 현안과제들이 회담상(床)위에 차려진다.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김칫국부터 마시는 식이다. "그래도 얻은게 그동안의 평화 아니더냐"고 햇볕 추종자들은 옹호 했지만 그것도 서해교전으로 날아가버린 지금이다.
우리는 이번 회담이 또 현안문제의 '원론적 합의'에 머물까 솔직히 두렵다. 예를들어, 철도문제는 또 '추후 계속논의'로 뒤로 미루고 이산상봉 날짜 정도 합의하고 식량 30만t 지원하는 것으로 끝낸다면 국민의 불신만 더욱 키우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방적 포격으로 무고한 장병 다섯이 숨진 사태에 대해 우리가 얻은 것이 고작 책임소재도 애매한 유감 한마디 뿐이냐"는 항변에 설득할 방법이 없어질 것이다.
따라서 마치 대화재개 자체만으로 식량지원의 가치가 있다는 식이어선 안된다. 서해교전은 '군사적 신뢰'문제 논의가 철도·금강산·이산상봉·식량문제의 선행사항임을 증명하고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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