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자립형 사립고 한학기 평가-일부 문제점 노출…일단은 성공

교육계 안팎의 찬반 논란 속에 올초 출범한 자립형 사립고가 한 학기를 끝냈다. '귀족학교' '입시 명문고' 등으로 변질될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됐지만 아직은 이렇다할 징후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향후 학교 운영 과정에서 우려가 현실화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이런 측면에서 경북 유일의 자립형 사립고인 포철고는 여러 비판들을 잠재울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포철고를 중심으로 자립형 사립고의 운영과 문제점, 향후 방향 등을 살펴본다.

▨제기되는 문제점과 현황=자립형 사립고는 학생 선발과 등록금 책정을 자유롭게 하는 한편 교과 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고교를 말한다. 제도 도입 취지는 획일적 학교 교육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었지만 학생 자율선발이 현재 평준화 제도의 틀을 깬다는 데서부터 교육계의 저항에 부딪혔다.

한 학기가 운영되면서 우려는 일부 현실로 드러났지만 부작용이 표면화될 정도는 아니란 게 교육계의 얘기다. 우선 등록금이 실제 일반 고교의 3배까지 인상된 학교가 많은 점은 기득권층에게 맞는 학교 형태란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한국교총 등은 등록금 조정 같은 보완책을 마련해 학교 선택권 제한이란 불평등을 최소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철고의 경우 재단 전입금이 풍부하기 때문에 등록금은 인상되지 않고 있다.

입시 명문고 부활, 고교 서열화 등의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신입생들이 벌써부터 입시에 매달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학교마다 특기·적성교육 강화, 수월성 교육 등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다. 포철고의 경우 올해 신입생 455명 가운데 포항 이외 지역 출신은 22명에 불과하다. 이들의 입시 결과는 2년 뒤에나 나오기 때문에 "포항은 물론 경북의 우수한 중학교 졸업생을 독식하지 않겠느냐"는 당초 우려는 아직 두고봐야 할 일이다.

▨포철고 운영 상황=신입생 선발에서 갈등이 다소 있다. 포스코 직원 자녀를 일반전형으로 70% 뽑고 나머지는 중학교 내신성적 상위 3% 이내, 특기자 등을 특별전형으로 뽑는다. 문제는 일반전형의 비율. 재단 전입금이 모두 포스코에서 나오므로 직원들은 일반전형을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외부로 문호를 더 넓혀야 한다는 불만도 높다. 장정충 포철고 교장은 "공립 중학교 교사들은 공립고 지원을, 사립중 교사들은 같은 재단 내 사립고 지원을 적극 권하는 현 상황에서 포철고가 학교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비판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포철고 올해 신입생들의 경우 교육과정은 일반 고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의 입시제도 아래서 학교측이 완전히 새로운교육과정을 편성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학교측은 교육 내용의 충실도와 다양성 등 작은 성과들부터 쌓아가는데 주력하는 모습이다.특기·적성교육은 대단히 다양하다. 특기·적성반이 90개나 운영되고 활동하는 클럽도 50여개. 교과 관련 내용이 많지만 오케스트라반,야생화반 등 특이한 것도 적잖다.

특성화 교육의 하나로 마련한 H·S·P(Honors Students Program)는 학교측이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수학·과학 부문에서 탁월한재능을 가진 학생 10명을 선발해 방과 후, 주말, 방학 동안 특별지도한다. 대상자는 성적과 관계없이 교내 경시대회를 통해 수학 5명,물리 3명, 화학 2명을 뽑았다. 이들은 1학년 때 고교 과정을 모두 끝내고 내년부터는 대학 과정을 배울 예정.

1학년인데도 벌써 각종 수학·과학 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포항공대 교수 6명이 지도교수로 선정돼 이들을 지도할방안을 학교 교사들과 협의하고 있다.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영어교육을 강화한 점도 눈에 띈다. 현재 1명인 원어민 교사를 증원하고 토익 600점 이상 의무적으로취득하도록 할 계획. 교내 특정 지역을 English Only Zone으로 지정해 영어만 사용하도록 하고 있으며 여름방학 동안 15명의 학생이 미국에서 열리는 국제 청소년 아카데미에 참석한다. 컴퓨터 교육도 강화해 1인 1자격증 이상 취득을 의무화했으며 사이버 스쿨 운영,ICT 수업 강화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명문대 입시 준비에만 매달리는 학교가 될 것"이란 우려와도 아직은 거리가 있다. 다른 일반계 고교와 마찬가지로1학기 동안 오전8시에 등교해 특기·적성교육 1시간을 한 뒤 정규수업을 하고 자율학습은 오후10시까지 했다. 여름방학 동안에는100시간 정도의 특기·적성교육을 한다. 이 정도면 포항, 대구 등의 고교보다 크게 많다고 할 수준은 아닌 것이다.

▨앞으로의 방향=장교장은 "등록금이 인상되지 않으니 학부모들도 무리한 요구는 않는다"고 했다. 뒤집어 말한다면 등록금을3배까지 받고 있는 여타 자립형 사립고들은 학부모들의 다양하면서도 강력한 요구에 시달릴 소지가 크다는 것. 이는 곧 명문대 입시라는 결과 위주의 학교 운영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교육계의 여러 우려는 얼마든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2002학년도 이후 입시부터 강조되는 특기·적성에 의한 학생 선발이라는 대입 제도 정착이 급선무다. 포철고의 경우처럼 다양한 특기·적성 교육에 중점을 둔 고교들이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거둔다면 일반계 고교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다. 반면 입시에서 학력이 최우선되고 자립형 사립고들이 여기서 좋은 결과를 거둬낸다면 기회 불평등을 비롯한 고교 교육의 왜곡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한 학기의 운영 만으로 자립형 사립고의 공과를 말하기는 힘들다. 내년에 선택 중심 교육과정이 도입되면 어떤 모습이 될 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학기의 운영 속에 자립형 사립고의 성공과 실패 가능성이 공존하고 있음은 교육부와 교육청 관계자들이 유심히 살펴야 할 대목이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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