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恨의 조선공예론'은 식민사관

"중국의 예술은 의지의 예술이고, 일본의 예술은 정취의 예술이었다. 그 사이에 서서 홀로 비애의 운명을 짊어져야 했던 것이 조선의 예술이다".

일본의 민예(民藝.민중의 공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가 '조선과 그 예술'에 쓴 유명한 얘기다. 야나기는 조선백자에 심취한 일본인으로 우리 공예(도자기.목공예.짚공예)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론적 체계를 최초로 정립한 학자로 평가된다.

야나기는 조선의 식민지배에 동정적 태도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배를 격조높게(?) 옹호한 일본지식인이었다. '조선공예는 한(恨)의 미' '조선 차그릇을 만든 사람의 감각만큼이나 발견한 사람(일본인)의 공로도 대단하다'는 그의 논리는 아직까지 황국사관마냥 우리 공예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예연구가 이데카와 나오키의'인간 부흥의 공예(학고재 펴냄)'는 '일본 민예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론'을 조목조목 비판, 화제를 불러일으킨 책이다.

야나기의 민예론은 '공예의 정통은 민중의 공예(민예)에 있다' '공예의 미를 간파하는 절대적 입장은 직관이다' '공예의 지고한 아름다운은 평상심.건강함.무심(無心)함.무사(無事)함의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은 가난하고 배우지 못해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명의 작품에 깃들어 있다'는 게 주요 골자다.

저자는 야나기의 공예론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검토한 결과, 인간성을 무시하고 있으며 현실 사회에 일정한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결론냈다.

여기에서 야나기의 민예론과 그에 대한 비판을 논하는 것보다는, 저자가 40여쪽에 걸쳐 야나기의 조선공예론에 대해 비판한 내용을 싣는게 좋을 것 같다.

1. 추초문(秋草紋)-야나기가 청화백자의 문양(국화, 난)을 애써 추초문이라 부른 것은 '애수의 조선'을 말하기에 가장 어울리는 호칭이었다.

2. 운학(雲鶴)은 쓸쓸한 문양?-고려청자의 운학 무늬를 보고 '쓸쓸한 구름, 학의 구슬픈 소리'로 표현한 것도 비애의 민족이란 논리를 끌어내기 위한 말이다.

3. 상감은 감추어진 문양?-상감을 '가슴 속에 잠잠히 숨긴 아름다움'이라 한 것은 '한의 조선'을 강조하기 위한 억지논리였다.

4. 선의 예술은 쓸쓸함?-'조선예술은 선(線)의 예술이고, 선은 비애를 단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라 한 것은 엉터리 표현이다. 우아한 곡선은 없다는 말인가5. 흰색은 언제나 상복?-야나기는 '백자의 흰색은 슬픔(喪服)을 나타내는 색깔'이라 한 것도 대전제에 맞추기 위한 궤변이다.

이 책은 비록 일본인의 시각이지만 야나기의 조선공예론을 통렬하고 예리하게 비판, 마치 더운 여름날 시원한 폭포아래 서 있는 것 처럼 청량감을 준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