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직접 밟은 북녘산하-(2)평양서 신평으로

양각도호텔은 대동강과 평양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강변 호텔이었다. 호텔 창문을 통해 보이는 평양 야경은 높은 건물들과 강변의 정취가 어울려 한여름의 더위를 잊게 했다. 그러나 높은 건물에 비해 다소 불빛이 침침하다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는 나중에 안 일이지만 평양에서도 절전을 위해 일찍 단전을 실시하기 때문이었다.

이튿날 당초 일정과 다르게 내금강 관광을 제의해 왔다. 관광일정에는 묘향산이 잡혀있었으나 뜻밖에 내금강 관광을 제의해와 선뜻 OK사인을 보내고 평양시가지-신평휴게소-원산-시중호-내금강에 이르는 관광길에 나섰다. 우선 이 코스를 선택하면 시원하게 뚫린 6차도의 평원고속도로를 통해 황해북도를 거쳐 강원도의 원산과 내금강에 이를 수 있다는 안내원의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평양에서 원산까지의 거리는 203km이다. 6차로의 넓은 평원고속도로를 승합차로 달리니 2시간 남짓 걸렸다. 평양~원산을 잇는 이 고속도로는 황북, 강원도의 험준한 산을 깎아 개발한 것으로 터널만도 22개나 되었다.

가장 긴 터널은 무지개굴로 무려 4km나 된다.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이 큰 공사에 인민군이 투입돼 군민(軍民)의 힘이 모아져 대역사(大役事)를 이루었다고 한다. 평양에서 한 40분만 빠져나와도 날씨는 완연한 차이를 보인다. 평양에서는 무더운 여름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으나 이곳서는 점퍼나 긴 셔츠를 입어야할 정도로 상쾌한 냉기를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필자가 쉰 휴게소 겸 전망대는 깊은 산허리에 위치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마신령'이라 불리는 이 지점은 몇십년전만 해도 호랑이가 출몰할 정도의 험준한 준령이라고 한다. 게다가 오가는 차량이나 인적의 그림자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비마저 내려 오싹한 추위까지 맛보았다.

가끔 주민 주민 서너명이 한데 뭉쳐 무엇인가 들거나 어깨에 멘채 비오는 고속도로의 양편을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안내원은 마을주민들이 일터로 가거나 이웃마을에 나들이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즐비한 차량과 휴게소마다 넘쳐나는 인파에 익숙한 필자로서는 고속도로를 외롭게 걸어가는 풍경이 왠지 처연하게만 보였다. 비에 흠뻑 젖은 채 우산이나 우의도 없이 걷는 북한 주민들의 한 단면이 안내원의 설명과는 달리 '고난의 행진'이 현재진행형임을 느끼게 했다.

1시간10분을 달려 황해북도 신평군 신평휴게소에 도착했다. 확 트인 신평호반은 둘레 산의 모양새가 특이한데다 기암절벽이 갖추어져 있어 여행에 지친 나그네에게 상쾌한 기운을 돋우게 했다. 신평휴게소는 신평호반을 배경으로 2층 건물로 잘 꾸며져 있었다. 차량 통행이 잦지 않은 터라 이곳을 찾는 여행자는 거의 없는 듯했다.

10여분간 커피를 들며 쉬는 동안 인민군 3명이 들어와 찬 맥주를 주문하며 담소하는 것이 손님의 전부였다. 그 중에서도 영관급으로 보이는 인민군에게 말을 건네보았다. 한국으로 치면 대령급인 그는 귀대중 목이 말라 부관, 운전병과 함께 맥주 한잔 하러왔다며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한국계 호주시민이라고 나를 소개하니 "객지에서 고생이 많겠군요"하고 악수를 건네왔다. 그 바람에 다른 인민군들과도 손을 맞잡으며 "서로 고생이 많습니다"며 덕담을 나누었다.

고속도로로 이곳까지 오는동안 인민군이 탄 트럭, 도보로 행군하는 인민군들을 많이 본 때문인지 인민군과 실제로 맞부딪쳐도 하등의 적대감이나 긴장감 같은 것은 느끼지 못했다.

신평호반 휴게소는 아래층에서 북한의 토산품을 팔고 이층에서는 간단한 식사 및 음료수 등을 팔고 있었다. 원두커피맛에 익숙한 필자로서는 휴게소의 커피맛이 왠지 씁쓰레할 뿐 그윽한 커피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박병태 〈재호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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