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가정해체는 가속화됐다.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빈곤층은 극빈층으로 추락하면서 깨지는 가정이 더욱 늘어났다. 가정의 해체는 결국 '갈 곳 없는 아이들'과 '양육 사각지대의 아이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런 아이들이 갈 곳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아동복지시설로 가면 되지 않느냐"고 얘기하지만 이런 시각에 반기를 드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사랑이 충만한 가정에서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이'를 내 아이처럼 보살펴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실태
동식(가명·3)이는 태어난 직후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엄마와 살고 있다. 하지만 동식이 엄마는 만성신부전증으로 주 3차례나 혈액투석을 받아야하는 어려운 처지.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동식이 엄마로서는 자신의 치료비도 감당하기 벅차다.동식이 엄마는 신장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열심히 수술비를 모을 계획이다. 빨리 건강을 찾아 동식이와 단란한 가정을 꾸려갈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식이 엄마는 약 2년간만 열심히 돈을 모으면 수술비 1천여만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 "딱 2년간만 우리 동식이를 키워줄 사람이 없을까. 2년만 참으면 우리 두 식구 다시 일어설 수 있을텐데…". 동식이 엄마는 눈물 마를 날이 없다.
지민(가명)이 엄마는 장기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해있다. 지민이 아빠는 당장 지민이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직장에 나가지도 못하고 있다. 생후 2개월밖에 안된 간난쟁이. 지민이 아빠는 답답하다. 아내의 회복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만 지민이를 맡아 줄 가정이 있다면…". 지민이 아빠의 가슴은 타들어간다.
▨가정위탁보호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가장 이상적으로 키우는 방법은 가정위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가정위탁보호란 아동의 부모가 아이를 양육할 사정이 되지 않을 때 아동보호를 희망하는 가정을 선정, 일정 기간동안 대리로 보호하게 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갈 곳 없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복지시설에 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결국 마지막 선택이복지시설이 될 수 있도록 가정보호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외국에서는 가정위탁보호가 보편적인 사회현상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것.실제로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전혀 모르는 사람의 가정에 위탁돼 살아가는 아이들은 전국적으로 324명(지난해 말 현재)에 불과하다.대구지역은 고작 10명 뿐이다.인구가 비슷한 인천(42명)보다 훨씬 적고 인구가 대구의 절반정도밖에 안되는 광주(18명)보다도 적은 실정이다.
▨사회의 관심
대구지역 사회복지단체인 우리복지시민연합은 지난 4월 가정위탁보호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대안가정운동본부(053-253-4675)'를 발족했다.도움이 필요한 아이들과 기꺼이 도움을 주겠다고 나서는 가정을 연계시켜 주자는 것.
이 단체는 지난 수년간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장기위탁형태로 돌봐주는 '해뜨는 집'을 운영하면서 가정위탁보호사업이 꼭 필요하다는 확신을 얻었다. 홍보가 부족했음에도 불구 벌써 12건의 위탁의뢰가 접수됐다. 상담의뢰까지 합하면 수십건이 들어왔다.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형편에 놓인 부모들이 도움을 청해온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일시보호를 의뢰해온 부모들이 실제 아이 맡길 곳을 찾은 경우는 아직 없다. 몇 명의 사람들이 가정위탁사업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나타냈지만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
'이혼한 애는 안된다' '4살 미만이어야한다' '남자가 필요하다' 까다로운 조건이 너무 많다. 하지만 대안가정운동본부 사람들은 실망하지 않고 있다. 이제 시작이기 때문이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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