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비-(5)절제있는 여가문화

자연의 우주질서 천리(天理)를 기본원리로 상정하고, 마음(心) 신체(身) 인간(人) 물질(物) 세상만사를 서로 소통시켜 조화로운 공동체사회를 구현하고자 한 조선선비들의 여가문화는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중용의 도리를 추구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국인 정서의특징을 한·멋·신명풀이로 구분한다면 선비문화는 멋의 범주에 들며, 그 가운데서도 단정하면서도 자연과 어우러진 여유로움의 운치라고 말하기도 한다.

옛 선비들의 이같은 여가문화는 보다 빠르고 감각적인 것을 요구하는 오늘의 상업적 대중문화 속에서는 외면받기 십상이지만 상업적 대중문화가 빚고있는 여러가지 병폐는 절제를 기반으로 한 옛 선비들의 여가문화의 의미를 새삼 되돌아 보게 한다.

옛 선비들의 일상생활은 벼슬자리에 나가기 전에는 하루종일 독서를 하며 때에 따라 제사를 올리고(奉祭祀) 손님을 맞는 것(接貧客)이 거의 전부였다. 그리고 예의와 염치의 규범에 따라 아무리 더워도 옷깃을 풀지 않고 아무리 불편해도 다리를 함부로 뻗지 않아야 하는 등 경건한 수도자적 자세는 선비들의 정감을 억제하고 기상을 억누르게 마련이었다.

옛 선비들은 이 억제된 정감과 억눌린 기상을 풍광이 좋은 한적한 곳에 집이나 정자를 짓고 시가(詩歌)를 읊거나 서화(書畵)를 통해 풀고자 했다. 그리고 이같은 선비들의 여가생활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을 노래한 도학적 시문학이나 문자향(文字香)이나 서권기(書卷氣)가 배어나는 글씨와 문인화(文人畵) 같은 독특한 선비문화를 낳았다.

퇴계는 도산서당 3간 초옥에 연못과 옹달샘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아담한 정원을 꾸민후 벼슬에서 물러난 탈속의 즐거움을 이렇게 노래했다. '뜨락을 거닐자니 달이 사람 따라오네/매화꽃 언저리를 몇 차례나 돌았던고/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기를 잊었더니/옷깃에 향내 머물고 그림자는 몸에 가득해라'.

조선후기 숙종때의 이유는 한술 더 떠 '산중에 문닫고 한가히 앉아 있어/만권서(萬卷書)로 생애하니 즐거움이 그지없다/행여나 날 볼 임 오거든 날없다고 아뢰어라'고 읊어 산속에 파묻혀 학문하는 즐거움을 반가운 친구를 만나는 것 이상으로 미화했다.

옛 선비들은 또 산자락이나 시냇가에 집터를 잡고 사는데 그치지 않고 인근의 산에 오르거나 전국의 명산을 유람하며 견문을 넓히고 호연지기의 기상을길렀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산을 유람하면서 적은 여행기 유산록(遊山錄)을 많이 남기고 있는 것도 이 때문으로, 이들 유산록 중에는 산 정상에 섰을때 마음이 탁트이는 느낌을 홀연관통(豁然貫通)의 깨달음과 대비시켜 노래한 대목도 드물지 않다.

글씨와 그림도 옛 선비들의 빼놓을 수 없는 여가문화의 하나였다. 글씨는 마음의 그림이라 여겨 단정하고 반듯한 글씨를 권장했으며, 그림은 작가의의취와 흥취가 드러나는 것을 높게 평가했다.

이처럼 여가문화마저 유교이념 구현의 수행과정으로 여긴 옛 선비들의 문화감각은 오늘날의 대중문화감각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단순하고 소박해 그대로 수용되기 어렵다.

그러나 정월대보름이나 단오절 대신 크리스마스가 더 대접받고, 전통민속놀이는 제쳐놓고 골프 스키 스케이트보드 등 외래놀이가 판을 치는 오늘의 여가문화에 대한 성찰의 교훈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욱이 주5일 근무제의 실시는 서구놀이 중심의 과도하게 들뜬 현재의 오락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을 요구하고 있다.

원래 놀이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상·하층민 구별없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더불어 즐기는 대동놀이였다. 이 때의 놀이는 생산적인 일과 분리되지 않고 일의 순조로운 진행을 기원하는 축제이거나 일의 풍성한 결과에 대한 감사의 놀이였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신라의 백희(百戱)백제의 잡희(雜戱)가 바로 그런 것들로 백성들이 남녀노소 구분없이 술과 음식을 나눠먹고 노래와 춤을 추며 즐기는 국중대회(國中大會)였다. 이러한 국중대회는 사회변천에 따라 고려시대 팔관회(八關會)와 연등회(燃燈會)로 계승되고, 조선시대 산대놀이(山臺戱)로 이어지다 없어지고 민속놀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최근의 월드컵 거리응원은 전통의 국중대회의 열기와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코흘리게 어린이에서부터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전국민이한마음이 되어 손뼉치고 환호하며 즐기는 모습은 상·하층민 구분없이 놀았던 국중대회 그대로 였을 것으로 믿어지기 때문이다.

그 원인이 젊은 세대의 자발성에 있든 답답한 현실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에 있든 우리들은 오랜만에 일체감 속에서 맘껏 즐겼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은유사이래 처음이라며 우리의 자긍심으로 치켜세우고 우리의 정신자세를 가다듬는 기회로 삼자고 하는 말들이 나쁠 것도 없을 듯하다.

하지만 월드컵을 보는 즐거움의 뒤에는 이 지구적 축제를 뒤에서 주무르는 거대한 상업적 조직이 있고 그들의 손끝에 따라 우리가 웃고 울고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즐기는 대상이 꼭 축구여야만 하는가, 우리의 전통놀이로는 그러한 효과를 올릴 수 없는가 하는 반성도 해봐야할 일이다.

오늘날 우리의 여가와 놀이문화는 영상 레저 스포츠 등 전영역에서 서구문명의 세계지배 영향으로 외래문화모방으로 치닫고 있다. 바캉스콘도미니엄 등 낯선 용어들과 더불어 행글라이딩 스킨다이빙 윈드서핑 등 외래놀이들이 곧바로 수입되고 확산돼 민속놀이의 계승을 방해하고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놀이의 개발을 억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놀이의 상업화는 놀이의 주체자인 대중을 소비자로 전락시키고 계층화시켜 놀이의 건강성 문제까지불거지고 있는 현실이다.

옛 선비들의 여가문화가 양반층에 한정돼 이미 계층화한 것이어서 결격사유가 없지 않으나, 적어도 서구모방의 여가와 놀이문화를 반성케 하고 생산적인일과는 격리돼 먹고 마시고 흥청거림 일색의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힐 수는 있을 것이다. 넘침은 모자람으로 덜어내고 모자람은 넘침으로 메우는 것이 생극론(生克論)의 삶살이 이치이다.

최 종 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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