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나온 생에 대한 따뜻한 반추

저 여자女子,/ 내 전생의 저 여자/ 부엌 칸 부뚜막에/ 암코양이처럼 걸터앉아/ 막걸리 한 사발/ 꿀물 마시듯 꿀떡꿀떡/ 시퍼런 김치줄기에 돼지고기 보쌈해/ 야무진 입매다시는(중략)…/ 어수선한 상가喪家분위기/ 휘어잡고 있는/ 저 여자女子/ 울음을 웃음처럼/ 갖고 노는/ 내 전생의 저 여자.

대구출신 여류시인 이명주(50·사진)씨가 새 시집 '곡비(哭婢)'를 펴냈다. 첫 시집 '집은 상처를 만들지 않는다'이후 7년만이다.이번 시집중 표제시에 해당하는 '곡비'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도 시 속에서 존재를 찾아헤매야하는 시인의 천형(天刑)을 노래하고 있다.

곡비는 조선시대 상가에서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부렸던 곡을 하는 여자노비. 망자의 혼령을 위로하고, 살아남은 자의 가슴에 남아있는 회한을 풀어주는 이다. 남의 슬픔을 대신 아파하고 슬퍼하는 곡비, '울음을 웃음처럼 갖고 노는' 모습이야말로 시인들의 전생이 아닐까.

죽음곁에 있으나 청승맞지 않고, '암코양이처럼 걸터앉아' '야무진 입매다시는' 그녀는 아름다운 프로다.이 씨의 이번 시집에는 쉰 줄에 접어든 시인이 유독 나이에 의미를 부여하며, 지나온 생에 대한 따뜻한 반추를 담았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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