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중구 남성로 약전골목 어귀에 자리잡은 창덕한의원 정병목(67) 원장은 평생을 약(藥)과 씨름해온 사람이다.
40년 동안 지금의 자리에서 한의원을 개업 중인 그는 부친과 아들로 이어지는 3대째 한의(韓醫)가족이다. 한학자로 향리에서 약을 다뤘던 조부까지 포함하면 4대째 대물림인 셈이다.
대구에서 개업 중인 한의사 큰 아들과 중국에서 유학, 침구사 자격을 갖고 있는 둘째 아들이 그를 잇고 있다.
그가 약과 인연을 맺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금은 대구시로 편입된 경북 달성군 공산면이 고향.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이름났던 부친은 비상한 재주에도 사주에 약할 팔자는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 유명한 경주한의원에서 수제자로 3년동안 약제 수업을 받았지만 부친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 일본 유학길을 택했다. 하지만 약과의 인연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
해방으로 귀국한 부친은 대구에서 전(廛)을 펴지는 않았지만 소일거리로 친구나 이웃들에게 약을 해주곤 했다. 이때 곁에서 약심부름을 하던 정원장이 약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애초 약은 정원장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청년시절 그는 역(易) 공부에 심취해 있었고, 출가를 꿈꾸는 젊은이였다. 출가를 감행하기도 했지만 집안 일로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대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게 된 그가 본격적으로 약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거의 독학으로 약을 공부하다시피 한 것이다.
약전골목에 터를 잡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1962년 한약업사 자격시험에 합격했지만 무의촌인 경북 문경에 의원을 개설하라는 당국의 지시에 그는 열세식구를 데리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의원 문을 열수가 없었다.
이듬해 재차 시험에 합격했지만 이번에도 경북 고령 우곡으로 발령나자 생활고에도 불구, 자격증을 묵혀둘 수 밖에 없었다. 우여곡절끝에 약전골목에 한의원 문을 연지도 벌써 40년이 흘렀다.
한때 출가를 꿈꾸었던 정원장은 당대 여러 큰스님들과도 친분을 갖는 등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인연에 대해 회고했다. 경봉, 향곡, 구산, 성철, 송담 스님 등 법력 높은 큰스님들과 얽힌 일화도 많다.
야간통금이 있던 시절, 당시 통도사 극락암에서 주석하던 경봉스님이 동화사에서 법회한다는 소식에 통금이 해제되자마자 찾아간 그에게 난생 처음 본 경봉스님과의 만남은 아직도 요령부득이다.
경봉스님은 남루한 차림의 그가 뒷자리에 서 있다 법당을 나서자 시자를 시켜 데려오게 하면서 많은 대중 앞에서 자기 옆자리에 앉히고 많은 스님들의 3배까지 받게 했다.
뿐만 아니라 대중이 보는 앞에서 글까지 써 주며 낙관받으러 통도사로 오라고 당부까지 한 것이다. 내키지 않아 많은 시간이 흐른 뒤 극락암을 찾아간 그에게 경봉스님이 '올 줄 알았다'며 반갑게 맞이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약보다 불가에 더 깊은 인연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늘 의원을 찾는 환자들에게 환한 미소를 잊지 않는 그는 "약은 세상의 이치와 다르지 않다"며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약을 다루고 사람을 대한다는 신념을 잊지 않고 있다.
서종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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