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상희칼럼-사람의 세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대기(大氣)로 덮여있는데 이 대기는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항상 움직이고 있다. 이 대기의 움직임을 우리는 바람이라 부른다.

이 바람은 그 방향이나 속도가 끊임없이 변한다. 바람은 자연계에 여러 가지 현상을 일으킨다. 높은 산이나 해안에 있는 나무를 휘어지게 만드는가 하면 모래언덕이 계속되는 사막을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자연이나 인간이 만든 공작물을 사정없이 파괴해버리기도 한다. 거기에는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자연의 엄숙함이 존재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연계에 만약 바람이 불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바람이 불지 않고 조용하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게 되어서는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마치 망망대해에 배를 타고 있을 경우 사람은 그 풍부한 물 위에 있으면서도 그 물로는 살 수 없고 따로 마실 물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공기가 있어도 그 공기가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심하게 오염되어 버리면 역시 사람은 살 수 없는 것이다. 바람은 이 오염된 공기를 깨끗이 씻어주는 청소부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바람은 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람은 자연과학의 대상으로서의 자연계에만 부는 것이 아니라 인문과학의 대상으로서의 인간사회에도 부는 바람이 있다. 다만 자연계의 바람은 눈이나 피부로 느낄 수 있는데 반해서 인간사회에 부는 바람은 머리로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사회현상에서 일어나는 바람은 자연계의 바람보다도 훨씬 다양하다.

바람이라는 말은 인간의 여가생활과 관련되는 문예적인 표현에도 나타난다. 예를 들면 풍월(風月), 풍광(風光), 풍정(風精) 등이 그것이다. 또 평탄하지 못한 인간사의 일면을 표현하는 경우에도 이 말이 등장한다. 풍파, 풍상, 풍진 등을 들 수 있다. '풍운이 몰려 온다'라는 말은 단순히 바람과 구름이 몰려오는 천후의 험악함을 뜻하기도 하지만 세태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잘 날 없다', '가지 높은 나무가 바람도 더 탄다'라는 말도 모두 복잡한 인간사회에 일어나는 바람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좀처럼 얼굴을 보이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면 '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느냐'고 한다. 이와 같이 항간에 풍미하는 크고 작은 바람은 바람결에 들려오는대로 우물가 아낙네들의 쑥덕공론의 화제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사회적인 풍토에서 일어나는 바람은 인간의 생활방식이 다양화하고 사회현상이 복잡해질수록 그 '바람의 세계'도 더욱 다양화하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이 바람의 영역에 정치와 관련된 바람이 뛰어들어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예를 들면 세풍(稅風), 총풍(銃風), 북풍(北風) 등이 있다. 북풍은 그것 하나만으로는 부족하여 신북풍까지 나왔다. 이러한 바람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로 정계를 쓸고 가는 이러한 바람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어떤 목적 하에 인위적으로 공작하여 일어나게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누군가가 이 바람을 일으키기 위하여 열심히 부채질을 한 것이다.

또 이러한 바람에는 그 바람에 대항하기 위한 맞바람이나 역풍을 일으키기 위하여 역공작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바람은 가능한 한 그 진원지를 감추려고 하기 때문에 그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둘째로 자연계의 바람은 계절에 따라, 또 시간대에 따라 대체로 같은 방향으로 분다. 그런대로 질서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예측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계의 바람은 수시로 분다. 그 시기도, 진로도 예측하기 힘들다. 다만 정치풍토가 혼란스럽거나 선거를 앞두고 있는 경우에는 그 빈도가 높아지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셋째로 자연계의 바람은 공기를 정화하는 효과를 가져오지만 공작적인 정풍(政風)은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정치 풍토를 더욱 혼탁하게 만든다.

왜 이러한 바람이 필요할까? 바람을 일으키려는 사람은 그 바람이 강풍이나 폭풍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가슴에 와닿지 않는 바람은 곧 소멸하기 마련이다.

자연계의 바람이 자연의 질서에 따라 불듯이 정계의 바람도 국민의 마음 속에 일고 있는 바람을 헤어려 자연적인 순풍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정치인은 그 순풍에 돛을 달면 되는 것이다.

이상희(전 대구시장.영광학원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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