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따라 터져나온 벤처비리와 투자위축으로 한국벤처의 근간이 흔들린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주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불어닥친 한국벤처의 이러한 위기상황은 역설적으로 지역벤처를 제대로 키울 수 있는 기회(?)일수도 있다.
1999년~2000년 '벤처거품' 열풍에서 소외됐던 지역벤처 기업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털어내고 사업에 전념할 수 있게 됐을 뿐아니라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지역의 인프라가 속속 완성돼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벤처 위기론은 무엇보다 투자위축에서 비롯됐다. KTB네트워크, 한국기술투자, 산은캐피탈, 무한투자 등 4대 벤처캐피탈의 올해 상반기 벤처투자액은 모두 909억원으로 지난 해 같은 기간 1천312억원의 69%에 불과하다. 더욱이 설립 1년 미만의 초기 벤처에 대한 투자액은 전체 투자의 5.8% 수준인 53억원에 머문 실정이다.
하지만 4대 벤처캐피탈이 투자할 수 있는 재원은 무려 3천361억원에 이른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흐르지 않는 것이 문제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잇단 벤처게이트로 인해 투자자들의 신뢰가 떨어지고 코스닥 진입요건 강화로 투자회수가 어려워진 것이 투자위축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서울의 한 벤처기업 CEO(최고경영자)는 "벤처기업들이 느끼는 자금난은 외환위기 때 보다 더 힘들다"며 "이대로 갈 경우 올해 말이나 내년초쯤 벤처기업이 무더기로 도산하는 벤처대란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엄격히 말해 수도권의 벤처투자 위축이 지역벤처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리는 없다. 하지만 지역벤처들의 투자유치 여건이 워낙 열악했던 데다, 벤처거품을 타고 과대평가됐던 수도권의 일부 잘 나가던(?) 벤처들과 달리 지역의 벤처기업들의 경우 자기 가치만큼만 투자를 받았기 때문에 최근의 투자 위축 상황에 따른 체감위기는 훨씬 덜한 것이 사실이다.
알짜로 알려진 몇몇 지역 벤처들은 "요즘 투자자들이 스스로 찾아와 투자를 수용할 의사가 있는 지 물어온다"며 "벤처붐이 한창일 때 지역벤처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던 것과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비록 모든 지역 벤처지원 기관들의 정체성과 역할이 명확히 규정된 것은 아니지만, 벤처지원 인프라가 하나씩 제자리를 잡아가는 것도 지역벤처들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재)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은 지난 달 대명동 건물(구 계명문화대학)의 보수를 끝내고 53개 벤처기업을 입주시켰고, (재)경북테크노파크는 연건평 2천200평 규모의 본부동을 최근 완성해 12개의 신규업체를 더 받아들인 결과 입주 벤처기업 수가 모두 63개로 늘어났다.
또 경북테크노파크 입주기업인 테크자인은 외부 투자유치에 성공해 공장설립에 나섰다. 오는 9월 준공 예정인 경북대 테크노빌딩 역시 지역벤처 육성을 위한 중요한 인프라가 될 전망이다.
박광진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장은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기업의 경우 서울에 있든 지방에 있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지역벤처를 키우는 데 가장 중요한 점은 지역시장을 육성해 최소한의 생존조건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코스닥시장의 체질 개선은 지역벤처는 물론이고, 한국벤처의 부활을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다. 부실기업에 대한 퇴출을 미룬채 코스닥 승인심사 강화로 진입장벽만 높이는 것은 기술집약형 벤처들의 자금조달을 막고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회피하게 만드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올해 코스닥 상장을 준비중인 6~8개의 대구지역 벤처들이 코스닥 입성에 성공할 경우 이에 따른 대규모 자금유입과 고무된 자신감은 지역벤처의 새 시대를 열 것이 분명하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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