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법륜-차 한잔의 여유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일상은 아침에 불전에 차를 올리면서 시작된다. 장마철이 지나면서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자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더위를 피하여 떠나는 피서 인파가 많아졌다. 이곳 산사에도 피서 인파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만큼 북적거린다. 차와 자연은 수행인들에게 감로수의 법이다.

차를 마시면 자연과 조화가 되어 자연과 내가 서로 하나가 되는 느낌이다.차를 즐기는 것은 산사의 오랜 전통 중의 하나이다. 차는 그 성품이 사(邪)함이 없어 어떠한 욕심에도 사로잡히지 않아 예로부터 많은 선사들이 맑고 깨끗한 마음씨를 기르고 나아가서 자신의 본성을 밝히기 위한 방편으로 차를 즐겨왔다.

특히 '선의 삼매경에 들어 깨달음을 얻는 길이나, 차의 삼매에 들어 묘경(妙境)을 깨닫는 것이 한가지'라 하여 다선일미(茶禪一味)를 주장한 조선 후기의대선사였던 초의 선사 이후 차를 마시는 것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수행자의 일상생활이 되었다. 차는 자연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마음을 다스리기에 물질 문명에 찌들려 잃어버린 인간의 본성을 밝히는데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자연이든 세상이든 다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마음이 진정한 인간의 마음으로맑고 투명하다면 세상도 맑고 투명해진다. 지금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 문명이기의 발달로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인 여유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옛날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허전하고 갈피를 잡기 어렵다.

이 모두가 마음이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한번쯤은 문명의 이기에의존하지 말고 가족들끼리, 아니면 한 두사람만이라도 조촐하게 녹차를 마시면서 잔잔한 마음을 나누어 보자.

그 속에서 문명의 이기가 가져다 주지 못하는 마음의 평온과 삶의 향기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이란 많고 큰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사소하고 조그마한데서도 행복은 찾아온다. 경쟁과 긴장에서 벗어나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여유 속에 행복이 있다.

법륜 동화사 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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