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조스팽의 '귀거래사'

최장수 총리로 안정된 정부의 기틀을 마련했던 프랑스 사회당 대통령 후보였던 조스팽은 시라크 현직 대통령과 벌인 올 대선(大選) 1차투표에서 예상을 뒤엎고 패배하자 미련없이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뒷마무리까지 깨끗하게 정리, 현지언론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학자출신으로 청교도적인 정직성과 차가운 지식인 이미지 그대로 그는 총리에게 주어지는 특별경비 약 180억원의 사용내역을 공개하고 쓰고 남은 약 30억원은 국고로 반납시키곤 총리실을 홀연히 떠났다. 사실 이 경비는 법으로 보장된 총리 비자금으로 재임때 다 써버렸다 해도 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이게 언론의 찬사를 받게된 배경은 재선에 성공한 시라크가 대통령시절 약 4억원의 호화개인여행경비의 출처가 문제됐고 그게 결국 80년대 총리재직때의 비자금이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그의 도덕성에 흠집을 낸 스캔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백, 수천억원이 예사로 거론되는 우리 '정치문화'의 잣대론 그런 푼돈을 갖고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보다 국부(國富)가 훨씬 앞선 프랑스가 '정치 선진국'인 이유가 한마디로 설명되는 대목이다.

우리 입장으론 65세라면 재수, 삼수를 생각할 연부역강할 나이인데도 구질구질하지 않게 탁 털고 정계를 떠나는 조스팽의 깨끗한 '귀거래사(歸去來事)'가 부럽기도 하고 신선하다는 느낌을 새삼 떨쳐버릴 수 없다. 이런 '정치의 투명성'은 프랑스의 오랜 '민주(民主)전통'이 기초부터 건강한 데 있고 그건 주민자치인 '풀뿌리 정치'가 바로 서 있기 때문이다. 그 주체는 바로 지역민의 선진의식을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지방자치'에 연원한다.

'민선 3기'에 막 접어든 우리 형편은 어떤가. 한마디로 실망스럽다. 이런 '자치' 수준이라면 오히려 '관선'으로 되돌려 놓는 게 낫다 싶다. 갈수록 '개선'은커녕 '개악'도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기초 단체장이건 광역이건 탈이 없는 곳이 몇군데일까 싶을 정도가 그를 대변해 주고 있다.

1기때 뇌물수수·선거법위반죄로 사법처리된 단체장이 전체 248명 중 9%인 23명이고 2기땐 무려 54명으로 2배로 급증했다. 그 중 광역단체장 16명 중 6명이 사법처리된 건 실로 충격이다. 게다가 3기인 지난 6·13선거에선 선거사범이 폭증했다고 한다.

입건된 인원이 2기에 비해 57%나 늘었고 구속자는 무려 147%나 증가했다니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더욱이 또 재·보궐선거를 치러야 할 요인인 기초단체장 당선자 20명이 이미 법원에 기소된 형편이다.

특히 광역단체장 16명 중 8명이 입건된 상태로 조사중이라니 출발부터 심상찮다.물론 법도 엄해졌고 단속도 강화된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도덕성에 원천적인 큰 문제가 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형사소추 이외엔 달리 실정(失政)이나 '행정 미스'에 대한 문책 등 견제장치가 없는 게 오히려 '겁없는 단체장'을 양산한 셈이 돼 버렸다.

물론 전체가 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잘못된 선택'이나 '잘못돼가는 단체장'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걸 의미한다. 일국의 수도(首都)를 맡은 장(長)이 행정의 기본 메커니즘도 몰라 취임하자마자 히딩크와의 사진촬영에 가족들이 나서는 소동을 일으키지 않나 장애인 아내이름으로 출고한 최고급 차를 굴리면서 10여차례나 교통법규를 위반한데다 범칙금까지 내지 않은 '기초질서사범'까지 있다니 그야말로 기초부터 부실한 게 현실이다.

더욱이 성추행 혐의까지 받고있는 단체장도 끼여있는 판국이다. 뇌물이나 인사비리 등은 '빙산의 일각'만 드러난다 해야 옳지 않을까 싶다. 이래가지고는 안된다. 사람도 망치고 제도도 흠집만 내게 된다.지방자치가 다소 위축된다 해도'주민소환제' 등 '견제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지방재정 확충방안이나 중앙의 권한이양을 점차 늘려 재량권을 확대하되 실정(失政)에 의한 민·형사상 책임도 함께 지우는 시스템도 도입해야 한다. '지방'이 부실하면 그건 '국가위기'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3기 단체장들은 특히 유념, 더욱 분발해 주길 당부한다.

그 대전제는 예컨대 중앙정치권이 해묵은 병풍(兵風)이나 일으켜 이판사판식의 전쟁을 치는 '졸속정치'부터 개혁해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다.

박창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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