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찰'을 자임하는 미국이 세계 최고의 '불한당'으로 지목한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나라, 이라크를 이끌고 있는 인물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이라크의 최고 권력자는 물론 후세인 대통령이다. 그는 국가수반일 뿐 아니라 군 총사령관이며 혁명평의회 의장, 집권 바트당의 총서기다. 후세인은 지난 1959년 대통령 암살시도로 유명해졌다.
이어 1979년 쿠데타를 통해 권좌에 올랐으며 반대파들을 총살로 제거했다. 그는 1980~88년 이란과의 전쟁 및 1991년 걸프전에서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후세인의 보안군이 그에 대항하는 수많은 쿠데타 시도를 무산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후세인이 혼자서 이라크를 통치하는 건 아니다. 그의 권력기반을 유지하는 두 축은 수도 바그다드 북쪽 타크리티 출신 고향 친척과 오랫동안 그를 지지하고 있는 혁명동지들이다. 후세인의 이라크 통치를 돕고 있는 인물들을 소개한다.
◇두 아들 쿠사이와 우다이=현재 후세인이 가장 총애하는 인물은 작은 아들 쿠사이다. 그는 아버지 사담을 빼다박은 인물이다. 지난 해 5월 런던에 있는 아랍신문 알 하야트는 "쿠사이가 아버지 자리를 승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쿠사이는 이라크의 군사 및 보안조직을 통해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지고 있다. 이라크 언론에선 그를 공화국 수비대의 '감독관'으로 언급하고 있다. 2001년 5월 그는 바트당의 이라크 지도자로 선출됐다. 바트당은 아랍세계에 퍼져있으며 아랍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쿠사이의 선출(사실상 지명)을 권력 승계의 신호로 보고 있다.
큰 아들 우다이는 보다 화끈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 사담의 인내심을 소진시켰다. 그는 길거리에서 '사냥한' 여자와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아버지 사담의 경호원을 언쟁끝에 사살하기도 했다. 우다이 자신도 1996년 암살시도로 중상을 입고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그의 권력기반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바빌 신문을 비롯 VOI(Voice of Iraq)로 불리는 록음악 방송 등 많은 미디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VOI는 미국과 영국 음악을 주로 방송한다. 우다이 역시 자신의 민병 조직을 갖고있으며 이라크 의회 의원으로 선출돼 있다.
◇다른 주요 인물들=알리 하산 알 마지드 장군은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사촌으로 이라크 권력층의 핵심 인물이다. 그는 분리독립을 추진중인 쿠르드족들에게 '케미컬 알리'로 알려져 있다. 1988년 쿠르드 마을 하라브자 공격때 이라크군에게 화학무기 발사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1990년 쿠웨이트 점령당시 쿠웨이트 총독으로 취임했으며 걸프전후 쿠르드족과 시아파 봉기 당시 진압책임을 맡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이라크 혁명평의회의 핵심 멤버이며 축출된 후세인의 다른 친척들과 달리 후세인의 믿을 만한 협력자로 남아있다.
타리크 아지즈는 걸프전 동안 외무장관으로 재직, 국제적으로 알려진 인물이 되었다. 크리스천인 아지즈는 사담의 옛 혁명동지이며 이라크에서 서구의 영향력 확대에 강력히 반대하는 인물이다.
그는 작년 그의 아들이 부패혐의로 체포되면서 기반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는 이제 외무장관이 아니지만 혁명평의회 위원직과 부총리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특히 걸프전 직전 제네바에서 열린 제임스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과의 회담때 후세인 대통령에게 전하는 조지 부시 전 미국대통령의 친서 수령을 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사건 후 걸프전이 발발했다.
현 외무장관 나지 사브리 알 하디시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 저지를 위해 외교적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는 비록 유력 가문 출신이지만 정치 지도자라기 보다 테크노크라트(기술 관료)로서 오스트리아 대사에서 외무장관으로 승진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그를 중량감이 떨어지는 한시적인 인물로 보기도 한다. 영문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으며 걸프전 동안 정보부 차관을 지냈고 한때 런던에서 이라크 신문사를 경영하기도 했다. 그는 후세인의 작은 아들 쿠사이와 가까운 사이여서 승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세인의 최측근 이자트 이브라힘과 타하 야신 라마단은 후세인이 중요 회의를 주재할 때 참석하는 인물이며 후세인의 지시를 집행하는 인물들이다. 이자트 이브라힘은 1991년 1월 걸프전 동안 말썽을 일으키지 말라고 쿠르드족들에게 경고한 인물로 뉴욕 타임즈가 보도했다.
당시 그는 쿠르드족 마을 하라브자를 화학무기로 공격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가평의회 부의장인 이브라힘은 사우디의 압둘라 왕세자와 포옹을 나누고 쿠웨이트의 영토주권 보장을 약속했었다.
타하 야신 라마단은 부통령중 한 사람이지만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지위는 아니다. 미국이 그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1998년 바그다드에서 오사마 빈 라덴의 수석보좌관 아이만 알 자와히리를 환대했기 때문.
라마단은 "미국의 위협이 우리를 두렵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외 이라크 망명자들은 1991년 후세인에 반대하는 남부 이라크에서의 소요사태때 탱크로 반란군을 깔아뭉개라고 명령한 인물로 그를 지목하고 있다.
조영창기자 cyc1@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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