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도 지리산 천왕봉 초입, 작은 골짜기에서 정가(正歌)수련의 기회가 있었다. 예로부터 지리산은 시인묵객들이 풍월을 읊고 금도를 전해주던 곳이라 아직도 선인들의 숨결이 피부에 와닿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매년 느껴보는 일이지만 옛 선비들이 산과 더불어 한평생을 무위자연을 벗삼은 이유를 알만하다. 무릇 백두대간의 끝자락을 밟고 우뚝 선 명산이지만 스스로 그 봉우리가 높다하여 교만하거나, 낮다 하여 주눅들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군자의 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신라 진흥왕때 거문고의 명인 귀금선생께서 지리산에 들어가 나오지 않자 금도가 끈어질 것을 염려한 왕이 윤흥을 남원공사로 부임케하여 제자들을 가르치도록 명하였다.
이후로 거문고의 맥이 단절되지 않고 전해져 오고 있다. 선비들은 가장 가까운 벗으로 책을 곁에 두었지만 인격수양을 위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벗이 거문고였다.
그래서 책과 거문고가 한쌍을 이룬다하여 금서라는 말까지 있다. 비록 거문고에 능하지 않터라도 서고 한켠에 줄이 없는 무현금이라도 한 대쯤 비껴 놓았다. 거문고를 탈때에도 그가 지닌 기량을 모두 드러내지 않는 것이 선비의 품격이요 덕목으로 여겼다.
하지만 절제하는 가운데서 율을 찾는 심미안은 범부로서는 감히 측량조차 어려운 경지라 하겠다. 옛날 어느 명필에 대한 이야기다. 한 명인이 고각에 사다리를 걸쳐놓고 글씨를 쓰는데 시기하는 사람이 밑에서 사다리를 떼어버렸다.
그러나 명인은 떨어지지 않고 현판에 붙어 있는 붓을 잡은채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한곳에 정신을 집중하였기에 현판에서 떨어지지 않았겠는가.
우리모두 한번쯤 곱씹어 볼 만한 의미있는 이야기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림.서예 등 우리 전통문화 거개가 같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인들 대부분은 자신의 뿌리를 잊은채 쉬운길만 택하려든다. 옛 속담에 돌장이 눈 끔쩍이 먼저 배운다는 말이 있다. 정도를 젖혀두고 잔재주 먼저 익히려드는 요즘 세태에 더러 맞는 말인것같다. 온고이지신의 참뜻이 더욱 아쉽게만 느껴지는 것도 이때문일 것이다.
김경배(인간문화재.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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