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이삿짐 가득 실은 말 달구지

기적소리 들리는 푸른 굴다리 지나

문門안 동네로 따각따각 들어갈 때

아버지 30촉 전구알 돌려 꼽으면서 씩씩히 말했네

"자 여기가 이제부터 우리가 살 집이다"

새 벽지가 뿜어대는 꽃 냄새를 맡으면서

나는 나비 같은 언니에게 물어 보았네

"왜 집은 함께 이사 오지 않았을까?"

"바보야 집은 그냥 거기에 남아 있는 거야"

지친 내 잠 속으로

노을처럼 쓸쓸함이 몰려올 때

남아 있는 집

멀리 어둑어둑 누워 있었네

능소화 피어 있는,

-이명주 '남아 있는 집'

▨이사는 근대의 산물이다. 농경문화적 삶은 한 곳에 뿌리 내린 삶이지만 산업화 이후의 삶은 떠돌이 삶이다. 요즘은 이사가 워낙 보편화 돼 그런 생각도 하지 못하겠지만 사실 이사는 자기 소외의 근원이다.

제 터전에 온전하게 자리잡지 못해서 하는 이사나 자녀의 학군 때문에 하는 이사조차도 사실은 그 근저에는 불안과 소외라는 근대의 심리적 기제가 놓여 있다. 그런 이사에는 반드시 남기고 온 집이 쓸슬하게 남기 마련이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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