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극단적 소외계층이자 사회적 약자인 여성 장애인. 그들은 성폭력에 가장 쉽게 노출돼 있다. 하지만 무시와 편견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그들에게 어느 누구도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단법인 대구여성장애인연대 부설 여성장애인 성폭력상담소 권순기(40) 소장은 여성 장애인들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장애인이면서도 장애인 여성들의 권익을 위해 불편한 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분서주한다. 성폭력 관련 상담과 현장 활동, 피해자 지원, 예방교육 등으로 바쁜 그는 장애인 여성문제에 늘 촉각을 곤두세운다.
권소장은 유년기에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한 몸이다. 하지만 그는 제자리에서 웅크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같은 처지의 장애인들이 사회로부터 차별과 피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이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사회운동의 필요성을 그는 절감했다. 대학에서 전공한 특수교육학은 장애인 문제에 접근하게 된 계기. 또 대구경북 지체장애 학생 동아리인 '푸른샘'을 통해 장애인을 돕는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가 처음 관심을 갖게된 분야는 장애아동교육. 정신지체아 특수학교인 상주 상희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장애아동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교육기관 설립을 꿈꾸었다. 하지만 세 차례의 자연유산으로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는 진단으로 3년만에 교직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구가톨릭대 대학원에 진학,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장애인복지학을 강의하는 틈틈이 사회단체 활동에 참여했다. 지난 1997년 대구여성장애인연대가 결성되면서 본격적으로 여성 장애인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특히 당면 현안인 여성장애인 성폭력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뜻있는 사람들과 이 문제를 협의하는 등 고민했다.
전국적인 조직인 장애인여성 성폭력상담소가 발족하게 된 것은 1999년 7년동안 성폭력에 시달려온 정신지체 여성 K양 사건이 기폭제가 됐다. 이같은 사실이 우리 사회에 알려지고 때맞춰 2000년 11월 여성부가 출범하면서 여성부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2월 대구, 서울, 부산 등 전국 9개 도시에 성폭력상담소가 개설됐다.
대구상담소(053-637-6057)의 경우 개소 후 사무실이 없어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다 최근 대구 달서구 대곡동에 터전을 마련하면서 안정적인 업무가 가능해졌다. 권 소장은 직원,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힘을 합해 상담활동에서부터 의료, 법률 문제 등 사후조치와 피해자 지원 및 예방활동, 홍보, 조사연구사업까지 많은 일들을 빈틈없이 마무리해내고 있다.
대구의 여성 장애인은 약 1만8천명선. 그중 지체장애인이 60%로 가장 많고, 시각.청각 장애인과 정신지체장애인이 40%를 차지한다. 사회가 갈수록 각박해지면서 정상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함부로 장애인 여성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일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상담소의 일도 늘고 있다.
권 소장은 장애인여성 성폭력문제가 일반인 성폭력 사건에 비해 훨씬 처리가 어렵다고 말한다. 피해자와 그 가족 등 최소한 10번 이상 만나 겨우 해결될 정도로 애로점이 하나 둘이 아니다. 사후조치도 쉽지 않다. 피해 여성들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계속적으로 위험에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권 소장은 장애인여성 성폭력문제에 있어 예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완벽한 사후조치도 필요하지만 성폭력을 미리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 이 때문에 예방 및 홍보활동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장애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가해자의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한 캠페인과 홍보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지난 7월말 경주에서 정신지체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2002 장애 딸들의 캠프'도 이런 예방 프로그램의 일환. 지역에서 처음으로 마련한 이 캠프는 정신지체장애 여학생들에게 일반인과 똑같은 삶의 참다움을 일깨워주기 위한 자리였다.
권 소장은 "정신지체 여학생들은 자신이 여성인지 남성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 성폭력 자체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들에게도 다양한 성적 가치와 행동방식이 있음을 일깨워주는 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장애인이 일반인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권 소장은 이런 건강한 사회를 꿈꾸고 있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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