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輕車와 '체면'

배기량 800cc 미만의 경차(輕車)가 국내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91년 5월이었다. 대우가 만든 흰색과 빨간색 '티코'가 거리를 질주하자 당시 국민들은 처음보는 깜찍한 모습에다 '저렇게 작은 차도 달릴 수 있구나'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작은 것을 일단 비하하고 '체면'을 앞세우는 천민(賤民)자본주의적 잠재의식 때문에 '티코'는 근거없는 루머에 시달려야했다.

▲차를 타고 풍선껌을 불지 말라느니, 도로에 껌을 뱉지 말라느니 하는 우스개가 돌아다녔지만 우리나라의 도로와 연료 사정을 감안할 때 경차는 그야말로 '국민차'로 대접받아 마땅하다는 데는 이설(異說)이 없다.

정부도 경차구입시 세금 일부와 고속도로 통행료, 공영주차장 이용요금의 절반을 깎아주는 등 경차 보급 활성화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득이 높아지면서 경차는 기대만큼 늘어나지 않았다. 경차에 대한 '관심'이 불붙은 것은 외환위기 덕분이다.

▲경차는 IMF사태 이듬해인 98년, 경제성을 인정받으면서 승용차 내수판매의 27.5%를 차지했다. 자동차 메이커로서는 '귀여운 효자'였다. 그러나 이후 경기회복으로 중.대형차에 대한 수요가 다시 급증, 경차 판매는 99년 14.2%, 2001년 7.7%로 계속 줄어들다 최근에는 7%이하로 떨어졌다.

마침내 현대.기아자동차가 2004년부터 아토스 비스토 등 경차(輕車)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니 서민들로서는 안타까운 뿐이다. 그나마 대우 마티즈는 경쟁력이 있어 계속 생산한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얼마나 갈지 의문이다.

▲'자동차 10년타기 시민운동연합'은 경차는 운행 총경비가 중형차의 49%에 불과할 정도로 경제성에서 엄청난 비교 우위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경차 판매가 뒷걸음질치는 이유는 우리 국민의 '큰 차'에 대한 선호도가 남다른데다 자동차 업체들이 수익성이 낮은 경차 판매에 심드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정부의 경차 지원책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점이다.

▲정부는 경차에 대한 도로 통행료 할인율을 50%에서 30%로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공영 주차요금 50%할인도 주차장이 대부분 사유화되는 바람에 있으나마나한 정책이 됐다. 경차가 누렸던 1가구 2차량 중과세 면제혜택도 사라진 지 오래며 이른바 '개구리 주차'도 더이상 허용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도로에서 온갖 홀대를 받아가면서도 경차를 고집하는 사람은 그만큼 국가의 자동차 정책에 동참하고있는 사람이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지금 경차 생산을 중단할 정도로 모든 여건이 향상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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